[인스피아] 🎓도서관엔 어떤 책이 있어야 할까? : ‘재테크 책 논란’ 을 보며

인스피아

🎓도서관엔 어떤 책이 있어야 할까? : ‘재테크 책 논란’ 을 보며

18분 2023.05.17

도서관 재테크 책 정보 엉뚱함

도서관엔 어떤 책이 있어야 할까 : ‘재테크 책 논란’을 보며

Library for nowhere books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87), 2023.5.17,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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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도서관, 재테크, 책, 정보, 엉뚱함

1.머리말
2.책의 홍수, 어떤 책을 고를 것인가? : 20억년의 질문
3.후줄근한 사람들과 엉뚱한 책들의 도서관
4.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최근 한 도서관이 재테크 서적을 구입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SNS에서 꽤 이슈가 되었습니다. 재테크 도서 신청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시세차익형 재테크 서적 구입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죠.

해당 결정을 한 사서 선생님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꾸준히 보는 책은 무엇인지’ ‘이 책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공공도서관의 책무”라고 결정의 이유를 밝혔는데요.(링크) SNS에선 이 결정을 두고 “재테크 책마저 제 돈 안내고 보려는 얌체들” 등의 규탄하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장서 균형을 맞추고자하는 도서관의 의도에는 저 역시 백배 공감했습니다만, 이 결정을 둘러싼 일련의 SNS 반응들에는 조금 갸우뚱해지기도 했습니다.

왜냐면 ‘어떤 책’을 도서관에서 공짜로 보려고 하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공공 도서관의 취지이고요.

주식, 부동산 등 재테크 도서가 가득 꽂힌 경제학 서가(왼쪽) 대학교, 시험 합격, 주식 떡상, 연예인을 만나게 해달라 등의 '2023 새해 소원'이 적힌 서울 한 공공도서관의 게시판. 이 문구들을 보며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소망을 품고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던 기억입니다.('류마티스 5만명, 과일 생선이면 예방인데'라는 문구는 새해 소원일까요?) /경향신문, 김스피 촬영

그것이 실용적인 목적이기 때문에 문제일까요?

누군가는 풍차를 만들고 자신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링크), 누군가는 언젠가는 나만의 가게를 열기 위해 커피를 배우고 싶어서, 누군가는 단지 곰이 많이 그려져 있는 그림책을 보러 도서관에 옵니다. 저처럼 아무 서가나 느릿하게 걸어다니며 해찰을 하는 것이 목적이거나, 여름엔 그냥 시원해서 올 수도 있는 것이고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는 만큼 도서관에 오는 목적은 모두 다릅니다.

“재테크 서적(‘돈 버는 책’)을 돈 안내고 보는 것은 얌체이다” “재테크 서적은 아주 나쁘다!” 등의 이야기를 하며 화를 내기보다는, 저는 그 옆에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찰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이야깃거리에 대해서입니다.

도서관은 왜 생겼을까? 왜 도서관에선 다양한 장서의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도서관엔 훌륭한 책만 놓여야 할까? 도서관에서 우리는 책과 어떤 경험을 할까?...

오늘 레터에서는 <분류의 역사>(알렉스 라이트)와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오수완)을 지팡이 삼아 - 수천년 역사를 지닌 도서관의 책장과 그곳에 꽂히게 되는 어떤 책들, 그리고 그곳을 어슬렁대는 사람에 대해 해찰해보려고 합니다.

【2.책의 홍수, 어떤 책을 고를 것인가? : 20억년의 질문】

오늘날엔 하루에 약 328EB(엑사바이트·약 3520억GB)의 정보가 생산된다고 합니다. 이는 100년 전 사람들이 평생 접하는 정보보다도 훨씬 많다고 하는데요. ‘책’으로만 좁혀놓고 봐도 우리나라에서 1년에 새로 출간되는 책은 6만종을 넘어섭니다.(링크) 이처럼 ‘정보의 홍수’지만, 우리의 머리와 자료 보관엔 분명 한계가 있고요.

이때 정리와 분류가 필요해집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정보, 책들 가운데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선택해서 잘 정리해둘지 궁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비단 오늘날 갑자기 ‘짠’하고 등장한 문제가 아니라 무려 20억년이나 된, 생명의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단지 근래 정보의 양이 폭증하면서 조금 더 절실한 문제가 되었을 뿐이죠.

<분류의 역사>를 쓴 미국의 정보문헌학자 알렉스 라이트(왼쪽) <분류의 역사>의 영어판 표지. Glut는 '과잉'이란 뜻입니다. 정보가 점차 과잉되는 시대에 정보를 어떻게 관리해야할지에 대한 궁리를 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도서관사'는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미국 정보문헌학자 알렉스 라이트는 <분류의 역사>에서 문자 이전 시대부터 인터넷 시대까지 인류의 정보 역사를 ‘분류 본능’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문자가 생기기 이전부터 사람들은 ‘산딸기가 저기에 많이 있다’ 등의 정보를 모으고 그중 필요한 것만 남겨 공유하고, 간편하게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골똘히 궁리해왔다는 것이죠.

그 중에서도 문자가 생겨난 이후 ‘정보’의 역사는 곧 ‘도서관’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컴퓨터가 생겨나기 이전, 중요한 정보들은 무조건 두루마리, 책으로 엮였고 그 책들을 잔뜩 모아놓은 곳이 바로 도서관이었으니까요.

즉 <분류의 역사>는 ‘도서관의 역사’라고 보아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로,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들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라이트가 이 책에서 제기하는 주된 질문 중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류는 수천년 역사동안 수많은 책들 가운데 어떤 책들을 ‘굳이’ 선택해서 도서관 서가에 꽂아왔는가?”

'세상의 모든 책을 모으겠다'는 포부를 지녔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왼쪽) 1611년에 설립되어 오늘날에도 보존되고 있는 영국 Hereford Cathedral의 Chained Library입니다. 인쇄술의 발전 이전에는 책이 굉장히 비쌌기 때문에 엄격하게 출입 자격을 제한하거나 이처럼 책의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책에 쇠사슬을 달아놓는 형태의 도서관이 많았다고 하네요. / wikipedia, westerndowns libraries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B.C 3세기~A.D 3세기 말?)의 목표는 아주 자신만만했습니다. 바로 “세상의 모든 책을 다 모으는 것”이었죠.

이곳의 초대 사서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심지어 도서관의 장서를 모두 읽어(!) 파악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이라면 절대 불가능할 일일텐데요.1) 이 때문에 아직까지 딱히 ‘정리’라든지 ‘분류’의 필요성은 크지 않았습니다.

중세시대~인쇄시대 초기의 도서관들은 주로 엘리트 수도사, 학자들만을 위한 폐쇄형 도서관들이었죠.

이곳에선 주로 엄선된, 학문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 책들을 모았는데요. 옥스퍼드 보들리안 도서관의 초대 사서였던 토마스 제임스(1573~1629)는 장서에 대해 “연감이나 희곡, 매일 수없이 인쇄되어 나오는 아무 쓸모없는 책들을 제외한다는 내 원칙은 절대 바꿀 이유가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도서관의 후원자였던 프랜시스 베이컨은 “도서관은 진실한 미덕으로 가득 차 있으며, 망상이나 기만이 없는 모든 성자의 유골이 보존된 성지와도 같다”고 말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후 활자가 발명되고 산업혁명 시기에 인쇄술이 본격적으로 발달하면서, 19세기 무렵엔 깜짝 놀랄만큼 책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저자가 책에서 주목하는 것도 이 시기 이후이기도 하고요.

인쇄기가 산업화되고 글을 아는 대중들이 늘어나면서 평온했던 도서관에 엄청난 압박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대영박물관 도서관에는 1800년에 4만8천권의 도서가 있었는데, 1833년까지 25만권으로 늘어났다[…]19세기에 산업화의 영향으로 도서관은 학자들의 조합에서 서지 조립 라인으로 탈바꿈하였다.

-알렉스 라이트, <분류의 역사>(이하 동일)

이시기에 공교육이 보편화되면서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다보니 도서관 수요도 아주 많아졌는데요. 심지어 책이 갑자기 ‘빵’하고 늘어나다보니, 서로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도서관들의 장서 목록이 너무 길어져 강 위에서 만날 지경이라는 농담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과잉 정보 시대의 도서관 역사(18~20C)’에서 제가 흥미롭게 읽었던 포인트는 두 가지였습니다.

1)#대중성 : 도서관이 모두에게 개방된 건 불과 100년쯤 밖에 안됐다!
2)#다양성 : ‘모범 서가’엔 ‘모범 책’만 있지 않았다

우선 ‘대중성’에 대해서입니다.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도서관의 역사에서 ‘95%정도의 도서관’은 모두 수도사, 학자, 유료 회원에게만 개방된 폐쇄적인 도서관이었습니다. 즉 오늘날처럼 누구나 도서관에 가면 공짜로 회원증을 만들어주고 맘껏 빌릴 수 있는 ‘공공 도서관’의 역사는 굉장히 짧은 것이죠.

또한 대중 도서관의 시대엔, 책의 적절한 선별과 ‘분류’가 특히 중요합니다. 책이 무지 많아졌을 때 - 학식이 높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책이 무질서하게 많이 쌓여있어도 그중에서 자기가 읽을만한 책을 스스로 찾을 수 있겠지만, 학식이 높지 않은 일반 이용자들은 눈이 빙빙 돌 수밖에 없는거죠. ‘대체 내가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는 거지?’라면서요.

이때 앤서니 파니치(링크), 찰스 아미 커터(링크) 등과 같은 전설적인 사서들은 모두가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직관적인 분류 방법을 새로 만들어냈습니다. 예를 들어 ‘동남아 요리 책을 찾고 싶군...’이라고 생각하면 얼추 ‘요리 코너’에 가서 둘러보면 될 수 있도록요. 지금은 이게 너무도 당연해보이는데 예전에는 책이 알파벳 순서로 꽂혀있었다고 하네요. 만약 그랬다면 내가 원하는 책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찾기란 정말 어려웠을 것입니다.

“파니치는 쏟아져 들어오는 엄청난 책들을 보면서 단순히 목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교육과 읽고 쓰는 능력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기회로 인식했다. 그는 도서 목록을 대중의 눈으로 새롭게 다시 생각하고 싶었다[…]나는 가난한 학생들이 배움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려 할 때 이 왕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과 똑같은 수단을 갖길 바란다.”

“커터는 파니치처럼 도서 목록의 내용을 분리하고, 평범한 독자들도 쉽게 찾을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서 주제별 도서 목록을 만드는 것을 수용했다. 그는 학식 있는 독자들과는 달리 공공도서관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특정한 책을 찾으러 도서관에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막연한 질문을 품고 도서관을 찾는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주제별 목록의 유용성이 도서관의 성패를 좌우한다.”

이들이 고안해낸 도서 분류법은 오늘날에도 잘 사용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런 대목을 읽으면서, 누구나 도서관에서 편하게 해찰을 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정보를 가꾸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 - 책을 선별하고 분류하는 노력, 꽂아두고 관리하는 사람들의 노동과 헌신 덕분이라는 것을 새삼 감사히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미 의회도서관에 마련된 토머스 제퍼슨 도서관. 그가 의회도서관에 넘겼던 도서 일부가 전시되어있습니다. (왼쪽) 미국의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1743~1826) / Library of Congress, Wikipedia

그리고 두번째, ‘‘모범서가’엔 ‘모범 책’만 있지 않았다(#다양성)’라는 점과 관련해서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장서량으로 유명한 미국 의회도서관의 전신이 된 어떤 ‘모범 서가’에 대해서인데요. 미국 의회도서관은 1798년 설립되어 1812년 전쟁으로 인해 장서가 다 타버렸는데요. 이후 토머스 제퍼슨이 꼼꼼하게 손수 읽고 살뜰히 모아온 개인 장서 약 6500권을 ‘통구매’하면서 그의 개인 장서는 오늘날 미 의회도서관의 뿌리가 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제퍼슨의 장서 목록이 단지 ‘정치, 외교’에만 머무른 것이 아니라, 모든 유용한 잡학, 쓸모없는 지식, 실용적인 지식들(철학, 역사, 법률, 종교, 건축, 여행, 자연과학, 수학, 고대 그리스 로마 학문, 현대의 발명, 열기구, 음악, 잠수함, 화석, 농업, 기상학...)을 포함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제퍼슨은 생전에 폭넓은 장서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고 하는데요. 그는 특히 “국회의원이 참고할 필요가 없는 분야의 책이란 없다”라는 말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 장서 목록 가운데 ‘모범적이지 못한 일부 책들’을 제외하자는 반발이 결국 철회되었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그(토머스 제퍼슨)의 장서는 대륙 간에 지식을 이전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구축하는 데 50년이 걸린 몬티첼로에 있는 제퍼슨의 도서관은 엄청난 지식의 창고였다[…]<보스톤 가제트> 신문은 제퍼슨 씨의 근사한 장서라면 모든 책, 시시한 철학서까지 다 얻어야 한다는 사설을 썼다. 반면 매사추세츠 주의 사이러스 킹 하원 의원은 무신론, 비종교적 서적, 비도덕적 서적은 제외해야 한다고 강하게 맞섰다. 진통 끝에 사이러스 킹 의원은 반대 의견을 철회했다. 그는 이 작은 행동으로 역사의 진보에 큰 영향을 미친 셈이다. 마침내 제퍼슨은 장서를 소나무 상자에 담아 마차 10대에 싣고 몬티첼로에서 워싱턴으로 옮겼다. 그는 나중에 “국가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썼다.

저는 이 결정을 바라보면서, 도서관은 ‘권장되는, 훌륭한 책’만 모인 곳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효율적으로 가치있는 정보를 선별하되 조우와 해찰, 반면교사 등의 여지를 남길 수 있어야 하는 공간인 것이죠.

요약하자면, 정보가 많아지면서 장서를 관리하는 것은 ‘모두’를 위해 지켜가야 하는 필수적인 공적 임무입니다. 다만 ‘서가에 꽂혀야 할 책’이 무엇일지에 대해선 앞으로도 열린 궁리가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도서관의 역사가 그래왔듯이요.

✏️

“도서는 인류의 기억racial memory을 보존하는 하나의 사회적 수단이며 도서관은 그것을 현시대 개인들의 의식 속으로 전달하는 사회적 장치이다.”

-피어스 버틀러, <도서관학 개론>

1)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소실 전 장서 규모가 약 70만권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아리스토파네스가 사서로 있었을 때는 장서 규모가 얼마나 됐을진 모르겠지만 분명 만만찮은 장서량이긴 했을 것 같습니다. 이때부터도 분류방법에 대한 고민은 존재했다고 하네요.

【3.후줄근한 사람들과 엉뚱한 책들의 도서관】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아무래도 ‘도서관에 꽂혀야 하는 제법 의미있는 책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다음 책은 어쩌면 정반대의 느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어서 다루려는 책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오수완)은 ‘후줄근하고 엉뚱하고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는, 농담같은 존재들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을 그리고 있거든요.

이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는 인구규모가 약 12만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시골 마을 호펜타운에 위치한 낙후된 도서관(호펜타운 반디멘 재단 도서관)의 이야기인데요.

이 도서관의 테마는 ‘어디에도 없는 책들을 위한 도서관’입니다. 왠지 그럴듯하고 멋져보이지만, 실은 어디에 분류할지 애매한 책들, 버리는 책, 출판을 거절당한 자비출판 책, 기증도서 등 ‘엉뚱하고 수상한 책들’이 모여드는 곳이죠. 이곳이 아니라면 꽂히기도 어려울만한 책들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제목의 책들이 이곳에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성공적인 꾀병쟁이가 됐나> <이 책을 빌리지 마라> <손으로 만드는 기타> <페퍼에 관한 모든 것>...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 소설 표지 (왼쪽) 많은 책들이 꽂혀있는 서가의 모습/ 나무옆의자 출판사, Unsplash

참고로 <나는 어떻게 성공적인 꾀병쟁이가 됐나>라는 ‘책 속 책’은 만성 통증 환자가 된 의사가 자신만만하게 자신이 어떻게 꾀병쟁이가 됐는지에 대해 쓰고 있는 책인데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반쯤은 웃음이 나오고 반쯤은 화가 나는” 책입니다. 이 책의 표지에는 숨가쁜 의료 현장을 배경으로 잇몸웃음을 짓고 있는 ‘성공적인 꾀병쟁이’의 모습이 큼직하게 그려져있습니다.

<이 책을 빌리지 마라>는 ‘빌린 책’을 읽는 게 얼마나 얼간이같은 행동인지에 대해 주장하고 있는 책인데, 도서관에 꽂혀있습니다. 그리고 제목대로 실제로 아무도 안 빌려 갔다고 합니다. 왜 도서관에 있는지 여러모로 어리둥절해지는 책입니다.

부록으로는 도서관에 관한 몇 가지 통계와 순위 자료가 실려 있다[...]흥미로운 것은 가장 많이 도난당하는 책의 순위에 애비 호프먼의 <이 책을 훔쳐라>가 상위에 있다는 것이다. 도서관 이용자들이 제목에서 용기를 얻어 그 말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것일까. 그렇다면 케빈 베커의 <이 책을 빌리지 마라>는 대출이 가장 이뤄지지 않는 책 순위에 올라야 마땅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 책을 대출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오수완,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이 책을 빌리지 마라>에 대한 책 속 서평)

이 소설 내내 그리 흥미진진하고 대단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저 이런 책들과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의 풍경을 그려내는 것이 이 소설의 주된 테마죠.

변변찮은 것은 서가에 꽂힌 책들 뿐만이 아닙니다. 이곳에 모여드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어딘가 수상하고 변변찮습니다. 책 도둑, 얼핏 마약 중독자처럼 보이는 래퍼, 왕년엔 라디오 진행자였던 노숙자, 백발의 노인 등 다양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이 호펜타운 도서관이 이런 엉뚱한 ‘책’들과 ‘사람’들이 머무를 ‘공간’을 제공해주었다는 것입니다.

등장인물들은 이 도서관에 머무르면서 ‘발견’되고, 관찰되면서 하나같이 새로운 면모를 보여줍니다.

머피는 처음엔 그저 민폐덩어리 노숙자처럼 보였지만 그는 알고보니 옛날 유명 라디오 프로그램(‘꿈꾸는 호펜타운’) DJ였습니다. 단정하고 조용한 백발노인 앳킨스씨는 알고보니 전 연극배우이자 아주 유쾌한 인물이었습니다.

주인공 일행은 어느날 들렀던 바에서 앳킨스씨가 기지넘치는 코미디쇼를 진행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죠.

“이름을 알기 전까지 그(머피)는 냄새나는 노숙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름을 알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순간 더 이상은 그를 예전처럼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이제 익명의 노숙자가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하는 한 사람이었다. 그러면 이제 소문을 듣고 더 많은 노숙자가 찾아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LM은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좋은 일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도서관으로 함께 돌아오는 길에 나는 <맥베스>의 한 구절을 빌려 ‘그 노인의 마음에 그토록 많은 웃음이 있었을 줄 누가 알았으랴’하고 말했다[…]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웃음’의 자리에 다른 낱말들을 하나씩 집어넣어보았다. 재치, 아름다움, 계획, 소망, 확신, 약속, 재능, 희망, 미래…”

도서관 이용자들은 단지 무언가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이들의 삶이 ‘책’을 만나면서 갑자기 성공시대가 시작되거나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습니다. 단지 이 책에선 이들이 좋아할만한 책, 작은 위안이 될만한 책에 만날 수 있었고, 책과 사람은 도서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뿔뿔이 흩어지더라도 사람과 책의 만남은 그 시간, 그 공간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도서관이 있었던 덕분에요.

도서관은 책과 사람을 환대하는 공간입니다. 이곳에는 그닥 실용적이지 않고 아무데서도 받아주지 않을 것 같은 엉뚱한 상상이 책으로 서가에 꽂힙니다. 그리고 엉뚱한 사람이 머무르며 그 책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적극적으로 자리를 만들고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는 책과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

“조금 식상한 은유지만 사람은 우주다. 사람은 책이다. 한 사람의 깊이는 우주의 깊이와 같다. 그 깊이를 헤아리기 위해서는 그를 오래도록 읽고 또 읽어야 한다. 그는 새롭게 계속 쓰여지며 끝나지 않는 책이다. 그리고 어떤 책은 시간이 흐르며 더욱 새롭고 흥미롭고 신비로워진다. 그런 책을 읽어 나가는 건 기쁨과 흥분을 주는 모험이다,”-오수완,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

【4.맺음말】

이번 레터를 쓰기 위해 도서관 관련 자료들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도서관이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라는 점이었습니다.

예전에 불과 몇십년 전엔 일부 공공도서관을 이용할 때도 (헬스장처럼) 일정 회원비를 내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는데요. 오늘날처럼 누구나 회원증만 만들면 공짜로 도서를 맘껏 빌리고, 보존서고나 상호대차 서비스를 이용하고, 각종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하고, 집에 여러권을 빌려갈 수 있게 된 것은 - 만약 약 2000년 도서관 역사를 '2시간짜리 영화'라고 보았을 때 지금의 대중 도서관은 불과 '5분' 정도밖에 안된 것이죠.

이어 도서관이 현재의 '대중 도서관'이 되기 위해 -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헌신이 필요했다는 점도 또한 결코 간과될 순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조차 도서관에 와서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도록, 단지 '도움이 되는 권장도서' 뿐 아니라 온갖 범주에 대한 책을 갖출 수 있도록, 변변하지 않은 사람과 책이 모이고 발견될 수 있는 공간을 주도적으로 꾸린 사람들이 없다면 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어떤 책도 저절로 땅에서 자라나지 않았듯, 역사적으로 어떤 도서관도 저절로 생겨난 적은 없습니다.

1876년 발행된 미 Athenaeum도서관 티켓. 국내에서도 공공 도서관마저 불과 수십년 전엔 입관료를 내야만 입장이 가능한 유료시설이었다고 합니다. 폐가식도 많았고요(링크) (왼쪽) 1886년에 사용된 매사추세츠 로웰 시립 도서관의 도서관 카드. 카드에는 "도서에 대한 모든 종류의 표시는 벌금 및 투옥 법령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으며 책임자는 기소할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곳의 책들은 깨끗했다고 합니다. / 자료 출처: The Library History Buff(링크)

실은 '재테크 도서 구입 중단' 소식과 관련된 일련의 SNS 반응들을 보며, 그간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 책 덕후인 입장에서는 조금 더 엉뚱하거나 훌륭해서 반짝 유행을 타지 않는 책들이 서가에 꽂혔으면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실제 그런 책들이 '대충 시류를 타는 책들'에 밀린다면 아주 슬픈 일입니다. 최근에도 그런 책들을 여러권 놓쳐 결국엔 보고 싶은 책을 보기 위해 헌책방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고요. 이 때문에 한정된 예산 내에서 최대한 다양한 책을 수서하려는 도서관 측의 의도에 공감했던 것이죠.

(*수서收書=도서관에서 책 등 자료를 구입하고 모으는 업무)

한편 동시에 일련의 논의 속에서 '재테크 서적을 신청하고,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조금 슬퍼졌습니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보이는, 묵묵히 300번대(사회과학) 서가에 둘러 앉아 열성적으로 재테크 책을 펼쳐보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2)

사람들이 관심이 있는 주제에 대한 정보를 찾으러 도서관에 오는 것은 당연하고 권장되는 일입니다. 오늘날이 ‘재테크 광풍의 시대’라면,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생긴 사람들은 당연히 많을 것이고요. 그 단어가 가리고 있는 현상 및 사기꾼 같은 책 또한 많을 것입니다. 한편 이 시대에는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하여 도서관에 발걸음 한다는 것 자체가, 더 깊은 정보를 적극적으로 얻고싶다는 하나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혹은 웹이나 사적 네트워크를 통해 양질의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정보 약자일 수도 있습니다.

원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집니다. 매번 읽고 싶은 책을 수첩에 잔뜩 적어가지만, 정작 그 목록을 그대로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도서관은 ‘서가 옆 책’3)의 법칙에 따라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마법같은 조우의 공간입니다.

재테크에 대한 관심을 단지 '얕고 세속적이다'라고 비판하는 것보다도, 이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 누구든 머무르고 누군가에 의해 발견될 수 있도록 하는, 토론과 조언, 환대의 공간을 만들어내자는 논의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요?

아비 스타인버그가 쓴 책 <교도소 도서관>에, 도서관과 관련해 제가 좋아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책은 하버드대 출신 풋내기인 저자가 악명높은 보스톤 교도소의 '교도소 사서'로 지내며 쓴 좌충우돌을 적은 에세이입니다. 이 책에는 밴드 '너바나Nirvana'에 대한 책을 찾으러 왔다가, 열반(Nirvana)에 대한 책을 빌려간 재소자의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아비 스타인버그는 도서관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도서관에 오는 모든 사람은 그저 ‘무언가’를 찾으러 왔다. 그들이 찾는 것은 엘리아가 돌보는 바로 그곳에, 서가에 있었다. 그곳은 머리에 종이꽃을 꽂은 제시카가 초상화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던 곳이고, 불안해하는 그녀의 감방 동료에게 리본을 주며 위안하던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이 어린 창녀가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들여다보며 앉아 있던 곳이기도 했고, 처드니가 첫번째 요리법을 발견한 곳이기도 했다. 수백명의 재소자가 잠시 와서 책을 찾는 곳이었다. 때로 그들은 그들이 무슨 책을 찾고 있는지 알고 있지 못했다.
침묵에 잠겨 몇 시간동안이나 책을 정리하고 있던 나는 문득 나도 그런 식으로 도서관을 찾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특정한 책이 아니라, 그저 어떤 책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 아비 스타인버그, <교도소 도서관>

성인의 절반이 한 해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시대에, 도서관이라고 친숙하게 느껴질리 없습니다. 그런만큼 도서관에 대한 ‘냉담’만큼이나 오히려 어떠한 종류의 ‘신격화’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도서관이 재테크책으로 범벅이 되는 것만큼이나 도서관에 권장되는, 대중의 삶과 유리된, 엄숙한 책만 꽂혀있어야 한다는 생각 또한 경계합니다.

어떤 책이 어떤 순간에 어떤 우연으로 어떤 사람과 만나 ‘스파크’를 만들어낼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범이 되는 사람들만 만나며 살 수 없듯, 책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이상 ‘책’에 대한 뉴스레터라기보다는 ‘도서관’에 의한 뉴스레터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일개 서가 해찰꾼의 의견이었습니다.

✏️

“러미스는 도서관 이용객들의 지적 건강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책임감을 느꼈다. “태울 성냥조차 아까운” 사이비 과학 서적들의 인기가 걱정스러웠던 러미스는 그 책을 치우는 대신 독자들에게 경고를 주는 소위 “문학적 정화 시행법”을 고안했다[…]경고카드를 만들어 끼워넣었다. 그는 카드에 “이 책은 우리가 도서관에 둘 수 있는 최악의 부류에 속합니다. 귀하가 이 책을 읽을 만큼 지각력이 없다는 사실이 유감스럽습니다”라고 쓰고 싶었지만 좀더 절제된 어조를 취하라는 말에 수정했다. 책갈피 모양의 카드에는 “최근에 이 주제를 좀더 과학적으로 다룬 책을 보려면 다음을 참고하세요”라고 적혀 있었고 사서들이 그 주제에 관해 좀더 유익한 책들을 기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러머스는 일기에 도서관에서 자신이 한 최고의 혁신들 중 하나로 책에 독극물 표시를 한 조치를 언급했다.” -수전 올리언,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실제 도서관 이용자 중 원하는 것을 처음부터 정확하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개인의 능력부족 때문이 아니라 정보와 지식의 탐구 과정이 질문과 대답을 거치며 구체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기본인 도서관이 어떻게 조용할 수 있겠는가[...]가장 조용한 도서관은 사람이 없는 도서관이다. 그러나 사람 없이 책만 있는 도서관은 그저 서고일 뿐이다. ” -김정은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사무관, ‘도서관은 시끄러워야 한다’(링크)

2)저는 도서관 책의 낙서를 관찰하는 것도 좋아하는 편인데요.(물론 낙서를 하는 게 좋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보통 이런 책에는 낙서도 특이하게 되어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인문학, 사회과학 책 등에는 낙서자가 요점을 잘 파악했다는 것이 보이는 낙서(스티그머지로서의 효능이 있는) 혹은 정식 편집 기호를 쓴 오탈자 수정 낙서가 많은 편인데, 이런 재테크나 자기계발 서적에는 모든 글자에 밑줄이 박박 쳐져있다가 갑자기 어느 대목에서 뚝 끊기는 편입니다. 리터러시 격차를 간접적으로 느끼게 되는 장면입니다.

3)'서가 옆 책'의 법칙 = 독일 예술사가 아비 바르부르크가 언급한 것으로 알려진 법칙. 도서관에선 내가 원래 보려고 했던 책보다도 그 옆에 꽂힌 책이 더 흥미로운 경우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레터에서도 언급했었습니다.(링크)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알렉스 라이트, 김익현 외 옮김, 『분류의 역사』, 디지털미디어리서치, 2010.

-인류의 역사를 '분류'라는 키워드로 대담하게 엮어낸 책입니다. 사실 오늘 레터에서는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는데, 이 책의 후반부에 '웹시대'를 다루면서는 도서관에 대한 언급이 딱 사라집니다. 웹의 시대에는 과연 책과 사서들은 필요가 없는 것일까? 하이퍼링크는 정말로 쌍방향 소통인가? 등의 재미난 추가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책의 마지막부분에서 월터옹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를 인용하며, 웹을 구술문화와 문자문화가 혼재된 세계로 해석한 부분에서 느낌표가 떠올랐습니다. 결국 웹 시대는 문자문화의 종말이자 구술문화로의 회귀가 아닐까라는 것이 이 책의 결론입니다.

오수완,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 나무옆의자, 2020.

-특이한 책과 사람들에 대한 흥미로운 소설입니다. '이상한 책 마니아'로서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이 모두 실존하지 않는 책이라는 점인데요. 본문에서도 짧게 소개했던 <나는 어떻게 성공적인 꾀병쟁이가 되었는가>라는 '가상의 책'을 보면서, 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 옛날에 도서관 건강 코너에서 봤던 '어떻게 하면 규칙적으로 흡연하면서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을까'에 대한 실용서가 떠올랐습니다. 하필 의사가 쓴 책이라 본문이 쓸데없이(?) 본격적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 책 한권이 금연에 대한 실존적 거부 및 흡연과 건강이라는 얼핏 모순되는 가치를 둘다 잡으려는 기묘하고 진지한 노력의 산물이었는데, 그런 이상한(?) 책을 깜짝 맞닥뜨릴 때의 놀라움이 저의 도서관 해찰에 있어 큰 기쁨입니다. 훌륭한 권장도서들이 가득 꽂힌 서가도 좋지만 이런 묘한 엉뚱함들이 머무를 수 있는 도서관이었으면 하는, 일개 이용자로서의 작은 바람입니다.

리처드 오벤든, 이재황 옮김, 『책을 불태우다』, 책과함께, 2022.

-이 책의 부제는 '고대 알렉산드리아부터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입니다. 제목을 보면 권력자가 의도적으로 책을 불태우는 '분서' '금서' 등의 내용만을 다루고 있을 것 같지만, 이 책의 뒷부분은 어떻게 디지털 시대의 정보의 홍수에 공동체의 중요한 기억, 경험을 '유실'하지 않고 지켜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책을 불태우는' 시대에서 '책이 (저절로) 불타는' 시대로의 이행이랄까요.

관련해서 지난 레터(✉️싸이월드: 디지털 일기장은 지속가능한가?)를 참조해보셔도 좋습니다.

【글 속 한 문장🖍】

👤주제에 대해 더 읽을 만한 글들을 골랐습니다. 각 사진을 누르면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비대면 업무↑...사서 노동 처우 심각

독서시간: 약 4분 / 글자수: 약 1800자

🖍글 속 한 문장

“사서로 오래 일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편하시겠네요’ ‘책 많이 보시겠어요’ 입니다. 고정관념과 달리 사서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녹록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육체노동자, 문화행사 기획자, 신간과 작가를 공부하는 전문가, 매일 수백 명을 상대하며 민원을 감당하는 감정노동자입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지난 10일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디지털 전환과 코로나19로 인한 사서직 직무변화 현황조사 및 정책지원방안 연구 토론회’ 관련 기사입니다. 코로나 기간동안 비대면 업무가 폭증했지만, 사서의 노동 조건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책 두권에 1000조원?...1일 사서체험기

독서시간: 약 9분 / 글자수: 약 4900자

🖍글 속 한 문장

“책 사냥꾼과 탐정이 고르고 검증한 책들은 자료조직과로 넘어간다. 책 한권이 국회도서관의 등록번호를 부여받고 라벨이 붙어 서가에 꽂히기까지 약 2개월이 걸린다. 자료조직과는 엄밀함과 싸운다. 번호 하나가 틀려도 등록이 안 된다. 단행본만 196만8000여권에 이른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국회도서관의 사서 업무를 1일동안 체험해 본 기자의 체험을 쓴 기사입니다. 제도의 허점을 노려 한 권에 수백만원부터 몇백조원(?)에 이르는 책을 떠넘기려는 얌체같은 사람들도 많다고 하니, 가히 이런 시도들을 뚫고 양서를 수서하고 책을 분류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슈퍼 히어로'라고 할만하네요.

한국의 ‘전문 사서’는 가능한가?

독서시간: 약 3분 / 글자수: 약 1600자

🖍글 속 한 문장

“몇 년 전 영국과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이용한 적이 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이는 전문가 못잖은 지식을 갖춘 ‘사서’였다. 사전에 온라인으로 신청한 자료 제공만이 아니라 연관 자료 목록까지 추가로 전달해 주었다. 반면 국내 공공도서관은 마법과 같은 고용법칙이 존재한다. 정규직 사서와 비정규직 사서, 그 외 보조인력이 각각 3분의 1의 비율로 활용된다. 이런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전문적인 서비스는 불가능하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의 칼럼입니다. 저도 예전에 해외의 도서관에 대한 책을 읽다가, 어떤 도서관엔 '만화 전문 사서'가 있어서 만화 포스터로 가득한 방에서 아이들, 성인 이용자들에게 훌륭한 만화를 추천해준다는 말을 꼭 판타지 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부러워하며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상적인 도서관에 대한 논의만큼이나, 도서관을 만들어가는 노동과 물적 조건에 대한 이야기가 결코 빠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도끼를 들고 숲을 향하는 당신들에게

독서시간: 약 3분 / 글자수: 약 1500자

🖍글 속 한 문장

중학생 아이는 12~16세 전용 열람실에서 놀며 책을 읽었다. 몇 시간 후에 만난 아이는 즐거워했다. 도서관은 어땠니? “훌륭했어!” 어떻게 훌륭했는데? “총류 서가가 비어 있지 않았어!”[...]이런 책은 비싼 데다 열람 빈도가 낮아서 청소년 열람실에서는 구색 정도만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식의 범위와 분류 체계를 보여주는 총류 서가야말로 도서관의 척추일지도 모른다. 대화를 조금 더 나누면서 나는 그곳에 청소년의 지성을 존중하는 사서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도서관은 나무와 같습니다.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습니다. 정성껏 돌보고 오랜시간 지켜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잘라내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그러한 시도는 현재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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