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없는 이들의 연대, 최소한의 희망

2013.02.19 22:11
하승수 | 변호사

지난 2월6일 아침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의 풍경은 참혹했다. 아스팔트 위에서 겨울비를 맞으며 밤을 지샌 사람들은 움직이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 비에 젖은 상복을 입은 사람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었다.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하며 밤샘 농성을 하던 와중에 경찰이 깔개와 비닐, 침낭조차 빼앗아간 것이다. 그래서 추위 속에서 날밤을 샜던 것이다.

지난 4년을 절망 속에 거리를 헤매온 노동자들은 그렇게 아침을 맞고 있었다. 24명의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안고, 15만4000볼트의 고압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위에 올라가 있는 동료들을 생각하며 인수위를 찾아온 노동자들의 가슴은 그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경향논단]힘 없는 이들의 연대, 최소한의 희망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만이 아니다. 며칠 전 들른 국회 앞에서는 8년 전 해고당한 공무원 노동자가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만나보면 모두들 동네 호프집에서 만날 법한 사람들이다. 가족과 함께 살고 싶고, 일상의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지난 대선 이후에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의 소망도 소박한 것이었다. 일터로 돌아가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회계조작과 부당해고, 노조탄압이 없는 정상적인 사회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권력은 이런 소망을 문전박대했다. 인수위는 불통이었다. 지금 발표되고 있는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을 보아도 소통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권력에 줄을 선 관료와 전문가, 기득권 정치인들이 ‘거리의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가질까? 재산이 50억원이 넘는다는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추운 겨울을 거리에서 보내는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들이 선거 때에는 무슨 얘기를 했는지 궁금해서 박근혜 당선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회가 우리가 꿈꾸는 국민행복 국가입니다’라는 슬로건이 보인다. 그뿐만 아니다. 좋은 얘기는 다 써놓았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생존권을 위협하는 정리해고를 최소화하겠습니다’, ‘노사관계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노사관계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정부가 공정한 조정중재자 역할을 하겠습니다’, ‘일방적인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 방지를 위한 사회적인 대타협기구를 설립하겠습니다’.

이런 공약을 내걸어놓고 노동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다니! 공약을 믿고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한 비정규 노동자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탄식만 나온다.

사실 5년은 긴 세월이지만 흘러갈 것이다. 지금은 무소불위인 것 같은 권력도 결국에는 허망하게 끝날 것이다. 지금 권력의 달콤함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앞으로 감옥에 갈 사람도 나올 것이다. 그동안 무수히 봐 왔고 겪어 온 일이다. 그래서 세월은 견딜 수 있다. 다시 힘내서 차근차근 대안을 만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다. 송전탑 위에 있는 사람,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무너진 삶은 어떻게 해야 하나? 가슴을 쳐봐도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보태고 지지하는 것밖에 없다.

다행히 연대의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전 본사 앞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릴레이 농성장에는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벌금과 법률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강정마을 후원주점도 열린다. 19일부터 23일까지는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위한 ‘희망걷기’ 행진이 평택에서 서울까지 진행된다. 행진의 홍보문구에는 “우리들의 걸음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언정, 세상을 바꿀 이웃의 마음은 바꿀 수 있을 때까지”라고 씌어 있다.

이 문구처럼, 연대를 위한 작은 행동이 사람들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으면 좋겠다. 최소한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와 지지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외롭지 않고 고립되지 않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연대하자. 함께 살자. 그것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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