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자가 선을 좋아하지 않으면…”

2013.10.04 20:59 입력 2013.10.04 22:28 수정
배병삼 |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진영 장관은 맡은 일에 충실한 분이었는데, 나라의 재정이 여의치 않아 그의 뜻을 반영하지 못해 무척 안타깝다. 앞길에 행운이 깃들길 바란다.’ 아! 이런 인사말이 대통령 입에서 나왔더라면, 국민들은 여성 대통령의 후덕함을 발견하였을 것이고 비판적이던 인사들도 고개를 주억거렸으리라.

다음은 맹자의 말이다. “위정자가 선(善)을 좋아하면 천하의 선비들이 천리 길을 멀다 않고 몰려와 최선책을 알려줄 것이다. 반면 위정자가 선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의 말투와 표정이 선비들을 천리 밖으로 쫓아낸다. 선비들이 떠나버리면 아첨하고 알랑대는 인간들이 몰려들기 마련. 나라를 잘 다스리고 싶다고 한들, 이런 한심한 자들과 같이 나라를 다스릴 수가 있겠더냐!”

[공리공담]“위정자가 선을 좋아하지 않으면…”

너무 이른 듯하지만, 이 지점이 이 정권의 분수령이지 싶다. 진영 전 장관을 두고 청와대와 총리, 여당 의원들이 벌떼같이 들고일어나 무책임한 자, 배신자로 매도하며 몰아가는 순간, 지켜보던 국민들의 마음이 굳어졌다. 정치는 특별히 사람이 중요한 장르다. “충직한 사람이 있을 때, 좋은 정치가 일어나는 법이라”고 유교 경전 <중용>은 콕 찍어 지적한 바다.

충성이란 무엇인가. 제자 자로가 임금 섬기는 법을 물었을 때, 스승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속이지 말고, 덤벼들어라(勿欺也, 而犯之)!” 속이지 말라는 경고와 덤벼들라는 권고는 같은 뜻이다. 둘 다 사람(임금)에게 복종하지 말고, 이치에 충성하라는 의미다. 사람에게 복종하는 짓은 조폭식 의리일 뿐이요, 제 업무에 충실한 것이 참된 충성이라는 말이다. 제가 맡은 업무의 옳고 그름을 주장하며 임금에게 덤벼들 때 좋은 정치가 이뤄지지만, 임금의 비위를 맞추려 들면 맡은 일조차 속이게 된다. 그러니까 “속이지 말라, 덤벼들어라”라는 것이다. 이럴 때만이 정치가 살아난다.

무사 출신인 자로에게 ‘속이지 말고, 덤벼들기’를 권한 데도 내력이 있는 듯하다. 본시 무사들은 윗사람의 지시를 완수하는 것을 미덕으로 아는 까닭이다. 그러니까 자로가 “군자란 용맹을 숭상하는 자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공자는 단호히 “용맹을 숭상하는 자는 난을 일으킬 뿐, 군자는 의를 숭상하는 자”라고 규정했던 것이다. 사안의 이치나 옳고 그름은 따지지 않고, 그저 윗사람에게 순종하며 지시사항을 달성하는 데 매진하는 용사는 개(충견)로 추락하기 십상인 때문이다. 여기서 정치는 패거리 짓으로 타락한다. 이런 충성이 에도시대 일본 사무라이들이 추종하던 태도였다. 일본식 충성은 주군을 위해 47명의 무사가 한꺼번에 목숨을 바친 ‘추신구라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수많은 일본 영화와 드라마에서 미화되었지만, 추신구라식 충성, 사사로운 의리의 귀결은 제 국민은 물론 이웃 민족까지 죽음으로 몰아간 군국주의였다. 지금 청와대가 요구하는 충성과 배신자라는 비난의 기원이 일본식 비천한 조폭 문화에 닿는다는 점은 알아둬야 하리라.

반면 충성의 본령인 ‘속이지 말고 덤벼들기’ 전통은 조선의 선비정신으로 이어졌다. 선비들은 임금의 잘못된 명령에 대해 상소문으로써 ‘덤벼들었고’ 세 번을 거듭 상소해도 반응이 없으면 도끼를 들고 광화문 앞에 부복하며 시위를 했다. 내 말을 수용하든지, 거부의 이유를 설명하든지, 아니면 도끼로 목을 치라는 뜻이다. 말없이 남의 목을 쳐서 충성심을 자랑하는 사무라이와 제 목을 쳐 도리어 말을 살리려는 조선 선비의 차이가 여기서 극명하게 갈린다.

그러나 추락하기로 치면 칼을 든 무사보다 붓으로 밥을 버는 선비들의 타락상이 더 심하다. 공자는 권력에 목을 매고 말을 파는 선비를 비부(鄙夫)라, 곧 ‘비천한 사내’라고 멸시하였다. “비부는 자리를 얻으려고 전전긍긍하다가 자리를 얻고 나면 잃을까 전전긍긍한다. 정녕코 자리를 잃지 않으려고 들면 이루 다 못할 짓이 없는 자들”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우리는 정권이 바뀌는 5년마다, 특히 새 정권의 초입에 앞장서서 험한 소리를 내뱉는 비부들을 많이 그리고 여러 차례 보아왔던 터다.

이따위 험한 입들을 두고 맹자는 이렇게도 씹었다. “말해서는 안될 말을 하는 자는 말로써 자리를 낚으려는 자요,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않는 자는 침묵으로 자리를 낚으려는 자들인데, 이따위는 남의 집 옷이나 그릇을 훔치는 좀도둑 부류다!” 권력에 추세하여 곡학아세하는 학자와 언론이 특히 주의해야 할 말이다.

하나 무엇보다 윗사람이 조심해야 한다. 사람에게 복종하는 자는 곧 사람을 배신하고, 이치에 충성하는 자는 불의에 목을 매는 법. 호가호위라, ‘호랑이 등을 타고 여우가 권세를 자랑한다’든지 면종복배라, ‘겉으로 복종하는 자가 속으로 배신한다’는 말은 예로부터 있어왔다. 달이 차면 기울고 꽃도 열흘을 붉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다만 달 기울 고 꽃 지는 시절은 ‘비천한 사내들’이 먼저 눈치챈다. 유신정권이 망하자마자 신랄하게 물어뜯던 자들이 바로 유신독재를 옹위하던 자들이었음은 이미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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