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하무인

2013.12.27 20:35
배병삼 |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지하철 안이 낯 뜨거워질 때가 있다. 청춘남녀가 선정적인 장면을 연출할 때다. 그들 눈에는 주변이 보이지 않는다. 앉은 사람은 눈을 감는 수밖에 없고, 주변 사람은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안하무인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전국의 교수들이 올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도행역시(倒行逆施)를 뽑았다. “잘못된 길을 고집하거나 시대착오적으로 나쁜 일을 꾀한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의 퇴행적인 일탈을 잘 꼬집은 말이다. 다만 말이 어려워서 설명해야만 뜻을 알게 되는 것이 번거롭다. 이참에 나도 네 마디 말을 꼽는다면 ‘안하무인’을 들겠다. ‘눈 아래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기고만장, 의기양양, 자고자대 같은 비슷한 뜻의 말들이 뒤를 잇는다.

[공리공담]안하무인

안하무인을 요약하면 교만이다. 교만의 교(驕)자 속에는 키 높은 말이 들어앉아 있다. 말 잔등도 사람 키만큼 높지만, 그 머리통은 한층 더 높다. 제 등에 올라탈 주인이 눈에 뵈지 않는 형국이다. 이 땅의 주인은 국민이다. 이게 우리 공동체의 범전인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뜻이다. 주인인 국민이 눈에 보이지 않았던 세월이 올해였다.

민주정치란 정치권력이 최상위에 있는 체제가 아니다. 정치는 다양한 사회분야의 갈등을 조정하고 조절하는 과정이다. 그제야 국가권력이 ‘공’권력이 된다. 대통령을 뜻하는 영어인 프레지던트가 본시 ‘사회자’라는 뜻이었음은 유의할 점이다. 대통령은 최상의 권력자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의 힘들을 조절하고 또 소통시키는 조정자라는 뜻이다. 법이란 갈등조절의 매뉴얼일 따름이다. 정치를 생물에 비유하는 까닭은, 애당초 사람 자체가 그 활자화된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장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란 갈등의 조정과정이지, ‘법대로 하라’는 명령일 수가 없다.

밀양 송전탑 건은 안하무인의 대표적 사례다. 오랜 세월 그 터에서 땅을 일구며 살아온 사람들의 삶은 안중에 없는 것이다. 송전탑이 차지하는 땅 크기만 필요할 뿐이다. 드높은 송전탑 아래 살아온 사람의 삶과 역사는 한낱 풍경으로 소외되고, 사물화되고, 화폐화된다. 이게 통분한 것이다.

이번 참의 민주노총 습격과 그 와중에 짓밟힌 경향신문사도 안하무인의 사례다. 노동과 언론은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이다. 이들을 얼마나 하찮은 존재로 여기는지는 경찰청장의 말투에서 여실하다. 민주노총은 불법을 저질렀기에 그 습격은 당연하고, 짓밟힌 신문사에 대해서는 고작 ‘죄송하다’는 것. 군대 시절 축구할 때 신참이 패스에 실수하면 뒤에 두들겨 맞지만 고참이 잘못하면 ‘미안’, 한마디로 넘어가던 게 떠오른다. 눈앞에 사람이 없다는 듯, 분하고 기막히게 만들어 그 눈에 핏발이 서게 만들어선 안된다. “네게서 나온 것 곧 네게 돌아가리라”고 했다.

‘기마자세’가 모든 운동의 기본인 까닭은 따로 있지 않다. 자기 몸을 낮춘 데서야 힘이 나오기 때문이다. 골프든, 권투든, 태극권이든 다 같다. 제 스스로 높여 우쭐대는 자세는 머지않아 제 풀에 죽는다. 그래서 노자가 말했다. 기자불립(企者不立)이라고. 발뒤꿈치를 들고는 오래 서 있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람관계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속마음을 제대로 알아야 내 말이 먹혀든다. 그러니 말을 잘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 말을 잘 듣는 것이 소통의 첫길이다. 그래서 ‘이해하기’가 사람관계에서 중요한 것이다. 정신과 의사의 일 가운데 큰 몫이 환자 말을 곰곰이 잘 듣는 것이라 들었다. 제 속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 앞에서 고통의 반이 풀린다.

말을 잘 들어주는 자리에 사람이 쏠린다. 물이 위에서 내려 쏟아지면 에너지가 발생하듯, 사람들이 쏠려드는 데서 힘이 생겨난다. 그 힘을 덕(德)이라고 불렀고, 덕의 힘으로 이루는 정치를 덕치라 했다. 덕은 스스로를 낮추는데 주변에서 사람이 몰려드는 힘이다. 곧 매력이 덕이다. 매력은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중에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라는 대목이 있다. 정상은 외롭고 춥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리라. 열대의 산꼭대기도 눈으로 덮여 있고, 표범조차 먹을거리가 없어 굶어죽는다. 홀로 고상한 가치를 좇아가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도리어 하이에나의 자리, 온갖 생명체들과 부대끼며 썩은 고기를 치우는 낮은 곳의 청소부가 정치가의 역할이다. 그곳에서 힘이 나온다.

며칠 지나면 새해다. 덕담이 없을 수 없다. 덕을 중시한 사상가, 퇴계와 율곡의 이름이 왜 골짜기를 뜻하는 ‘계-곡’인지 헤아려보길 권한다. 산의 정상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 계(퇴계)와 곡(율곡)을 이름으로 삼은 선인들의 뜻을 반추해보자. 퇴계는 1000원권의 얼굴이요, 율곡은 5000원권 초상이니, 그 뜻을 잘 살펴 살다보면 돈도 끌려 들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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