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 이야기

2014.01.17 20:30 입력 2014.01.18 03:21 수정
배병삼 |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새해는 갑오년, 말띠 해다. 갑오의 갑(甲)은 청색을, 오(午)는 말을 상징한다. 이에 올해를 ‘청마의 해’라고들 하는 것이다. ‘갑’이 왜 청색과 관련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오행사상의 영향 때문일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공리공담]청마 이야기

십간의 첫 번째인 ‘갑’은 출생을 뜻하므로, 자연스레 싹의 색깔인 청색과, 해 뜨는 동쪽 방위를 그 속에 담은 듯하다. 오행설은 중국에서 나온 것이라 그 동방에 위치한 조선을 청색의 땅으로 여겼다. 하여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 ‘푸른 산등성이’로 이름 붙이기도 했던 것이다.

또 한낮, 정오를 뜻하는 ‘午’가 왜 말을 상징하게 된 것인지는 더욱 알쏭달쏭하다. ‘갑골문사전’에서 ‘오’자를 찾아보니, 그 형상이 ‘짧은 끈 아래 매달린 동그라미 두 개’로 되어 있다. 이것은 말 잔등의 좌우에 늘어뜨린 등자(말을 탈 때 발을 넣은 고리)를 본뜬 것이다. 이제야 ‘오’자의 본래 글꼴은 사람이 말을 타고 발로 박차를 가하는 모습을 묘사한 글자인 줄을 알겠다.

이런 모습은 ‘말을 제어한다’고 할 때의 어(御)자 속에 살아남아 있다. 이 글자의 가운데 부분을 꼼꼼히 관찰해보면 ‘午와 止’로 이뤄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止’는 발모양을 상형한 것이니까, 이것들은 말을 탈 때 등자에 발을 집어넣는 것을 응축한 모습이다. 곧 제어하다는 뜻의 ‘어’는, 주인이 말을 제 마음대로 이리저리 부리는 행동을 묘사한 글자가 된다. 이런 행태가 임금의 권능에 비유되면서, ‘어’는 군주를 상징하는 말로 전변되었다. 임금의 명령은 ‘어명’이요, 임금의 용품은 ‘어용’이고, 임금의 자리를 ‘어좌’라 하고, 또 임금이 친히 보낸 감사관을 ‘어사’라고 이름 붙인 것은, 두루 ‘말’과 관련을 맺고 있다. 요컨대 말 등자를 형상한 ‘오’가 말 전체를 상징하게 된 것이다.

말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말은 가축들 가운데 인간과 밀접하게 연결된 동물이다. 역사서에도 말은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만큼 사람과 긴밀하였다. 역사서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우리에게 낯익은 인물이다.

그의 성씨가 사마(司馬)다. ‘사마’는 글자대로 새기자면 ‘말을 맡아보는 직책’이다. 옛날 문자사전인 ‘설문해자’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니, ‘말은 전쟁을 뜻한다’(馬, 武也)고 되어 있다. 곧 옛날에 말의 쓰임새는 운송용이나 농업용이 아니라, 군사 용도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사마는 군사 책임자를 뜻한다. 오늘날 식으로 하자면 국방부 장관이거나, 국방 관련 고위직이다. 그런 직책을 대대로 계승한 데서 생겨난 성씨임을 알겠다. 그것이 가문전승으로 이어지다보니 사마천이란 이름에까지 이른 것이다.

올해의 명칭 갑오년의 문자적, 역사적 의미를 결산해보니 그리 유쾌하지가 않다. 새해 운수를 보는 길거리 ‘철학관’에서 신수풀이하는 말투를 흉내내어 읊어보자면 이런 식이다. ‘에~ 갑(甲)은 청색이요 청색은 동방인지라 조선을 뜻하고, 오(午)는 말이라 전쟁을 뜻하는데, 에또~ 지난 1894년도 갑오년 해에, 조선 땅 안팎으로 전쟁이 터졌던 것이 그 증거라. 올해가 어찌 될 줄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으나, 나라 안팎으로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인데, 다만 동쪽의 일본이 독도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조짐이 하수상하고, 또 북녘에서 김정은이 자기 인척을 살상한 것도 괴상한 일이라. 운운.’

그러나 공자라면 이런 술사의 해설에 콧방귀를 뀌리라. 그 스스로 ‘점치지 않는다’(논어)라고 공언했기에 하는 말이다. 하면 공자에게 새해의 전망을 물어본다면, 어떨까. 그도 말에 의탁하여 올해를 예측하리라.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을 빌려본다. “천리마 기(驥)를 칭찬하는 까닭은 그 힘 때문이 아니라, 그 덕 때문이다.”

당시 천리마로 소문난 ‘기’를 명마로 일컫는 까닭으로 공자는, 그 말의 빠른 속력이나 지구력 때문이 아니고 승마자의 안위를 배려하고 그 뜻을 헤아리는 덕(德) 때문이라고 짚은 것이다. 본시 말은 무력이요, 전쟁을 뜻한다. 청색은 동방을 의미했다. 지난 120년 전, 갑오년에는 조선땅 안팎으로 전쟁이 났었다. 하나, 같은 갑오년이라고 유독 전쟁과 재난이 일어나라는 법은 없으렷다.

공자가 ‘천리마 기’를 힘이 아니라 덕 때문이라고 칭찬한 까닭 속에는, 곧 덕행이 천지의 운수를 이긴다는 뜻이 담겨 있다. 공자의 뜻을 이어, 맹자는 ‘전쟁에 천시와 지리도 중요하지만, 인화(人和)만은 못하다’고 하였고, 서양의 마키아벨리도 운명을 이기는 것은 덕성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올해가 아무리 힘들다 한들 상대방을 아끼고, 그 하소연에 귀를 기울이며 또 아픔을 함께 나누는, 사람의 고유한 덕성을 발휘할 수 있기만 하다면, 그깟 운수타령이야 어찌 감히 범접할 수 있으랴. 나라 밖 일도 마찬가지다.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예로 대함이, 날뛰는 청마의 고삐를 잡고 길들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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