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이 모두 제거된 동물원

2014.03.30 20:39 입력 2014.03.30 20:42 수정
강신주 | 철학자

평화로운 동물원이 한 곳 있었다. 이곳에는 사자나 독수리와 같은 육식동물을 가두어 둔 우리도 있고, 다람쥐나 사슴과 같은 초식동물을 보호하는 우리도 있었다. 어느 날 동물원에 변화가 찾아오게 되었다. 사자 등은 동물원을 구획짓는 수많은 우리들이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야생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이상 사료로 주어진 죽은 고기를 먹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철학자 강신주의 비상경보기]철책이 모두 제거된 동물원

이들의 속내를 눈치채지 못한 순진한 몇몇 초식동물들은 사자나 호랑이의 의견에 동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들도 우리에 갇혀 있는 것이 여간 갑갑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동물원 당국자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동물원에 설치되어 있던 수많은 칸막이들을 일순간 모두 제거해버린 것이다. 하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동물원 당국자는 동물원 바깥에서 안전하게 있으니까 말이다. 그저 그는 동물원에 다시 찾아온 야생의 활기, 피냄새를 풍기며 구가되는 자유의 풍경을 흥미진진하게 관람하면 그뿐이다. 사실 동물원 당국자는 사자나 독수리 위에 있는 최종 포식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보수적인 사람들, 그러니까 무엇인가 지킬 것이 있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를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으로 규정하는 데 사활을 건다. 물론 그들의 시선은 ‘민주’보다는 ‘자유’라는 단어에 꽂혀 있다. 낡은 것이든 아니면 새로운 것이든 그들은 자유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사실 따뜻해 보이는 자유주의라는 이념은 차가운 자본주의의 외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자유주의라는 단어에서 일체의 낭만주의적 열정을 읽으려 해서는 안된다. 자유주의는 돈을 가진 사람이 그 돈을 아주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자본주의적 이념에 지나지 않으니까. 제약 없이 투자를 할 수 없다면, 자본을 어떻게 증식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마음껏 소비할 수 없다면, 엄청난 부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 바로 그들의 정직한 속내이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이 제약되지 않는 사회, 한마디로 자신이 가진 정치적 권력 혹은 경제적 부를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그렇기에 그들의 눈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동등한 정치적 주체라는 ‘민주주의’ 이념이 여간 못마땅한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저잣거리의 할머니와 같은 권리가 있다는 건 정말 불쾌한 일 아닌가. CEO의 입장에서 자신이 회사의 보잘것없는 사원 한 사람과 똑같은 제약을 받는다는 건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쁜 일 아닌가. 자신이 가진 기득권이 있는 그대로 인정되는 사회, 나아가 자신이 가진 기득권이 원활하게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 가능한 사회. 자신과 초식동물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철책이 사라지기를 꿈꾸는 사자처럼, 기득권자들이 꿈꾸는 것이란 바로 이런 사회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철학자 강신주의 비상경보기]철책이 모두 제거된 동물원

▲ “정부의 규제 완화 조치는 선한 이웃을 위한 게 아니라
지금도 압도적인 힘을 가진 자본가를 위한 것이다”

지금 그들의 꿈은 조금씩 현실화되려 하고 있다. 그들의 힘에 걸림돌이 되었던 것들이 하나둘 제거되고 있으니까. 그렇다. 과거에 학교 주변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관광호텔도 이제 누구나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규제가 완화된 것이다.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에는 지을 수 없었던 건축물도 이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멋지게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규제가 완화된 것이다. 부분별한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한 공장 주변의 녹지도 이제 지역 주민들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없앨 수 있게 되었다. 규제가 완화된 것이다. 부동산 경기에 찬물을 끼얹었던 분양가 상한 제도도 이제 폐지되어 고급 주택이 부유층의 지갑을 유혹할 수 있게 되었다. 규제가 완화된 것이다. 이제 기득권자들은 거칠 것 없는 핏빛 자유를 구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든 규제 완화는 선량한 우리 이웃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자본가를 위한 것이다. 당연한 일 아닌가. 학교 주변에 관광호텔을 신설할 수 있는 것도, 자연경관을 독점할 수 있는 거대 호텔을 멋지게 세울 수 있는 것도, 녹지를 없애고 공장을 증설할 수 있는 것도, 고급 주택을 만들거나 살 수 있는 것도 모두 우리 사회의 자본가 혹은 자본이 아니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결국 현 정부가 풀어버린 규제는 자본 혹은 자본가에 대한 규제였던 셈이다. 이제 자본이란 호랑이는 현 정부를 통해 날개를 달아버린 형국이다. 물론 그 대가는 치명적일 것이다. 러브호텔의 기능도 수행하는 관광호텔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은 개방적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누구나 볼 수 있었던 자연경관도 이제 호텔 투숙객이 독점하게 될 것이다. 공장을 둘러싸고 있던 녹지들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우리 이웃들의 숨소리는 불쾌하고 탁해질 것이다. 고급 주택이 많이 등장하면서 우리 이웃들이 구매할 수 있는 주택은 그만큼 줄어들고 비싸질 것이다.

집권 1년 만에 박근혜 정권은 우리 이웃들을 유혹하던 화장을 깨끗이 지우고 마침내 자본 편을 들고 싶었던 자신의 도도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까지 보편적 복지라는 화장이 얼마나 거추장스럽고 불편했을까. 어쩌면 길면 길다고 할 수 있는 1년이라도 화장을 유지하고 있어준 것만으로 우리는 고마움을 느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평생 어울리지도 않는 화장을 하느니 당당히 민낯으로 살려는 것, 이것은 현 정권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 아니 행복한 선택일 것이다. 물론 정권의 행복한 선택은 우리 이웃들에게는 거대한 불행의 시작일 테지만 말이다. 이제 현 정권은 ‘자유주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실행하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한다는 미명하에 말이다. 이제 사자와 사슴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철책이 깨끗하게 사라지려 하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야생의 피냄새가 진동하게 될 동물원 아닌 동물원이 탄생하는 건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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