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니다, 연락주세요

2014.06.08 20:32 입력 2014.06.08 20:50 수정
정끝별 | 시인·이화여대 교수

▲ 팝니다, 연락주세요

화장실 변기통에 앉아서
콩팥을 팝니다 전화주세요,를 보다가
나도 내 장기를 팔아 노후를 준비하듯
우리나라를 조금씩 떼어서 해외로 수출한다면
사람들은 모두 부자가 될 것이다
당겨쓴 카드빚과 텅 빈 통장을 생각하면
개인이 겪는 슬픔 따윈 아무것도 아닌
다수의 다수를 위한 두루마리화장지처럼
계속 풀려나오는
누군가의 슬픈 낙서 앞에서
나라가 있어야 개인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지 말자
누가 나를 좀 팔아다오
나도 그에게로 가서
기꺼이 삼사만원의 현찰이 되어줄 테니

- 최금진(1970~ ) 부분

[경향시선 - 돈 詩]팝니다, 연락주세요

△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라는 아마존닷컴의 카피는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명문장이다. 노동을 팔고 시간을 팔고 사랑을 팔고 신념을 팔고, 팔다팔다 더 이상 팔 게 없어서 결코 팔아서는 안되는 것들을 파는 세상은 안녕한가? 물뽕, 청산가리, 수면제, 대포폰, 대포통장, 권총, 필로폰…, 키워드만 치면 뭐든 다 사고팔 수가 있는 사회는 안녕한가? 매매 앞에 놓인 ‘불법’이 단지 수식에 불과한 이 시대는?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에서 돈이 없는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다. 상품에 불과하다. 급기야는 제 피를 팔고 제 장기를 팔아야 하는 개인을 그 사회와 국가는 책임지지 못한다. “나라가 있어야 개인이 있다”는 말이 허울 좋은 허구에 불과한 이유다.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를 조금씩 떼어서 해외로 수출할” 수밖에 없는, 돈 없는 나라의 안녕을 자본주의는 책임지지 못한다. 불평등과 매매가 만능인 시대를 걱정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니, 돈으로 사지 못할 게 없는 사회에서 돈이 없는 사람들은 단 하나뿐이자 단 한번뿐인 “자신의 생으로 뭔가를 증명해야”만 한다. 이 신자유-자본주의 화장실 벽에 “제일 싼 血 팝니다,/ 자본주의 만세!”라고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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