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중국 3대 작곡가, 정율성을 아시나요

2014.07.29 21:20 입력 이기환 사회에디터

“허균의 시 중에 ‘속마음을 매번 밝게 비추고(肝膽每相照), 티없는 마음을 시린 달이 비추네(氷壺映寒月)’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7월 초 서울대 강연에서 인용한 허균(1569~1618년)의 시이다. 시는 허균이 정유재란 때, 명나라군의 일원으로 파견됐다가(1597년) 귀국길에 오른 오명제에게 전한 ‘송별시’이다. 시 주석은 허균의 시를 인용하면서 ‘티없는 마음으로(氷心玉壺), 속마음을 터놓는 사이(肝膽相照)’로 양국의 우호관계를 설명한 것이다. 시 주석이 중·한 우의의 상징으로 언급한 인물 가운데 ‘정율성(鄭律成·1914~1976)’이라는 이름이 눈에 띈다.

정율성(사진)은 ‘의용군행진곡’의 녜얼(섭耳·1912~1935), ‘황허대합창’의 시싱하이(洗星海·1905~1945)와 함께 중국의 3대 작곡가로 꼽힌다. 광주(光州) 출신인 정율성은 항일투쟁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간 뒤 1937년부터 공산당의 근거지인 옌안에서 맹활약했다. 혁명의 열기로 가득찬 옌안의 거리를 묘사한 ‘옌안송(延安頌)’(1938) 등 400여곡을 작곡했다.

뭐니뭐니해도 시 주석이 언급했듯 그의 ‘불멸의 노래’는 ‘중국인민해방군가(옛 팔로군행진곡·1939)’이다. 노래는 ‘전진(向前)! 전진! 전진! 우리들의 대오 태양 따라 나간다(我們的隊伍向太陽)’로 시작된다. 일본군과 싸우는 팔로군(중국공산군)의 기백이 돋보이는 대서사시라는 평을 받고 있다. 애창되던 군가는 1988년 중앙군사위원회에서 ‘중국인민해방군가’로 공식 인정됐다. 정율성은 옌안 시절 훗날 중국 최초의 여성대사(주 덴마크·주 네덜란드)가 된 딩쉐쑹(丁雪松)과 결혼,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2009년 건국 60주년 행사에서는 ‘신중국 건국에 공헌한 영웅 인물 100인’ 가운데 6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묻힌 바바오산(八寶山) 혁명 열사릉 비문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인민은 영생불멸한다. 마찬가지로 정율성의 노래도 영생불멸할 것이다.”

현대 중국사를 빛낸 한국인 위인인데, 왜 국내에서는 조명받지 못했을까. 정율성은 1945년 해방 이후 당의 명령에 따라 북한으로 가는데, 거기서 ‘조선인민군행진곡’과 ‘유격대전가’ 등 북한 군가를 다수 작곡한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이 불렀던 군가들이다. 중국과 북한의 대표군가를 작곡한 정율성…. 그러니 정율성이라는 이름이 남녘에서 제대로 평가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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