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릉조(小陵調) - 1970년 추석에

2014.08.31 21:04 입력 2014.10.13 14:42 수정
정끝별 | 시인·이화여대 교수

▲ 소릉조(小陵調) - 1970년 추석에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 천상병(1930∼1993)

[경향시선 - 돈 詩]소릉조(小陵調) - 1970년 추석에

△ “가난은 내 직업”(‘나의 가난은’)이라며 가난을 축복이자 긍지로 삼았던 시인이 있다. 가난했기에 막걸리 한 사발, 담배 한 갑, 버스표 한 장에 행복해했다.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시인의 보람”(‘주막에서’)이라며 스스로를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행복’)라 여겼던 우리의 천상병 시인이야말로 오늘날과 같은 돈의 시대에 천상시인이고 성자시인이라 할 만하다.

시인은 가난을 빈곤이나 궁핍으로 느끼지 않았고 가난이 인간의 위의(威儀)와 인간다움을 다 빼앗을 수 없다고 믿었음에 분명하다. “잘 가거라/ 오늘은 너무 시시하다”(‘크레이지 배가본드’)며 이 자본의 세상으로부터 그 어떤 부자보다 더 멀리 나아갔고 더 높이 날아갔다. 시인을 시인으로서 멀리 보게 하고 높이 살게 했던, 그런 가난의 위엄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런 시인도 명절과 가족 앞에서는 가난의 막막함을 통감했나보다. 두보의 호(號)가 ‘소릉(少陵野老)’이니, 제목 ‘小陵調’(小와 少는 통용되기도 한다)는 두보풍으로 가난을 읊는다는 뜻일 게다. 추석인데도 여비가 없어 귀향은커녕 성묘도 못하는 형편을, 안록산의 난으로 가난하게 타향을 떠돌았던 두보의 처지에 빗대고 있다.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라는 끝 구절에, 두보의 “소릉의 촌로는 울음을 삼키고 통곡하며(少陵野老呑聲哭)”라는 시 구절을 덧대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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