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어

2014.10.05 21:09 입력 2014.10.05 21:22 수정
정끝별 | 시인·이화여대 교수

▲ 전어

불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냄새는, 헛헛한 속을 달래주던
장바닥에 나앉아 먹는 국밥 한 그릇의, 그런 감칠맛이어서
손바닥만 한 것이, 그물 가득 은빛 비늘 파닥이는 모습이
그래, 빈 호주머니 속을 가득 채워주는 묵직한 동전 같기도 했겠다
흔히 ‘떼돈을 번다’라는 말이, 강원도 아오라지쯤 되는 곳에서
아름드리 뗏목 엮어 번 돈의 의미를, 어원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바다 속에서, 가을 벌판의 억새처럼 흔들리는 저것들을
참, 동전 반짝이는 모습처럼 비쳐 보이기도 했겠다
錢魚,
언제나 마른 나뭇잎 한 장 같던 마음속에
물고기 뼈처럼 돋아나던 것

- 김신용(1945~) 부분

[경향시선 - 돈 詩]전어

△ 팔월 전어는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은 이제 무색해졌다. 봄 전어도, 여름 전어도 대박들이다. 그럼에도 전어 하면 시월, 가을 하면 전어다! 뼈째 먹는 전어회(무침)는 그 식감과 단맛이 단연 최고다. 고소한 맛을 원한다면 구이로 먹어야 한다. 집나간 며느리가 돌아올 때까지, 잘잘 기름이 돌 때까지, 노릇노릇 숯불이나 연탄불에 구워야 제 맛이다. 잔가시는 물론 뼈, 머리, 내장까지도 다 먹어야 고소함의 깊이가 완성된다. 그 맛이 얼마나 고소했으면 가을 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말이라 했을까.

그런데 전어는 왜 이런 ‘錢魚’일까? 옛글에 따르면 가을 전어 한 마리가 비단 한 필 정도였음에도 맛이 좋아 돈 생각하지 않고 사먹었다고 해서 전어라 했다지만, 시인의 말대로 “손바닥만 한 게” “(은)동전이 짤랑이는 것 같기도 하”고. 헛헛한 속을 달래주는 그 기름진 맛이 “빈 호주머니 속을 가득 채워주는 묵직한 동전 같기도 해”서 전어가 되었을 법도 하다. 그러니 나는 이제 전어를 ‘쩐어’라 부르겠다. 어쩐지 돈 생각이 “마른 나뭇잎 한 장 같던 마음속에/ 물고기 뼈처럼 돋아”나는 것 같지 않은지. ‘떼돈’ 생각이 굴뚝같은 이 가을엔 어쨌든 쩐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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