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시’ 오해했다가 망신당한 외국 기업

2014.12.25 21:23 입력 2014.12.25 21:26 수정
홍인표 국제에디터·중국전문기자

얼마 전 끝난 TV드라마 <미생>에 중국 특유의 문화 현상인 ‘관시(關係)’를 거론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상식 차장은 중국 태양광 사업을 검토하면서 “관시가 관행이라지만 정당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며 “관시를 이렇게 크게 했는데도 사업을 못 따면 우리 팀이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관시는 리베이트, 뒷돈을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중국에 진출한 많은 외국 기업들이 관시를 뇌물을 주는 것으로 잘못 이해했다가 망신을 당하고 있다. 세계적인 제약회사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2007년부터 2013년까지 6년 동안 30억위안(5313억원)의 뇌물을 의사들과 병원 관계자들에게 뿌렸다가 경찰에 걸렸다. 영국 국적의 중국법인 대표는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회사는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벌금인 30억위안을 물었다.

[홍인표의 차이나칼럼]‘관시’ 오해했다가 망신당한 외국 기업

중국 국가대표 선수들은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 독일 아디다스 용품을 쓰고 있다. 아디다스 맞수인 미국 나이키는 중국축구협회를 공략했다. 중국 유명 육상 허들선수였던 리퉁을 마케팅 부사장으로 스카우트해 축구협회 간부들과 꾸준하게 관시를 맺은 뒤 2009년 10년짜리 프로축구리그 공식 후원업체 계약을 맺었다. 문제는 중국 경찰이 중국축구협회 비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리퉁 나이키 부사장이 세야룽 당시 축구협회 부회장에게 30만위안(5313만원)의 뇌물을 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리퉁은 중국 경찰에 구속되고, 나이키는 벌금을 물어야 했다.

중국에 진출한 일부 외국 기업은 관시를 쌓으려면 호화판 술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돈을 많이 썼지만 사업 성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중국 측 인사들은 외국 기업을 사업 파트너가 아니라 접대를 하는 물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면 관시란 무엇인가. 오랜 친구관계에서 우러나오는 우정인가.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관시에 대해 ‘문자 그대로 연결하다는 뜻이다. 특히 중국에서 사업을 할 때 유리한 사교관계를 가리킨다. 영향력 있는 인간관계를 말하기도 한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 월간지 애틀랜틱은 ‘미국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가 중국에서 정상영업을 하는 것이 갈수록 어렵다’는 기사에서 외국인들은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곧 신기한 단어인 관시를 알게 된다고 전하고 있다.

관시는 중국의 고유한 전통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워낙 넓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살다보니 인간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러 곳에 아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것이 바로 자산이고 힘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관시는 관(官)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이 특징이다. 명나라와 청나라 당시 황제가 살았던 베이징은 자금성을 중심으로 내성과 외성이 둘러싸고 있다. 외부 인사가 권부 핵심인 자금성까지 들어가려면 외성과 내성을 거쳐야 하는 복잡한 단계를 밟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연재해나 전란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백성들이 서로 뭉쳤다. 혈연이나 지연을 중심으로 일정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면서 서로 도움을 주는 사이로 발전했다. 난세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이었다.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이 중국인들과 맺는 관시를 보면 유력인사 자제를 채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유력인사 자제들은 한 자녀로서 집안에서 막강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모건 스탠리는 중국 현지합작증권회사에 중앙정부 고위 인사 자제들을 채용했다. 이들을 로비스트로 적극 활용했고, 그들을 통해 얻은 고급정보를 영업에 활용했다며 구설에 올랐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원자바오 전 총리 딸과 거래를 했고, 국영기업 고위층 자녀들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중국에서 혜택을 많이 챙겼다고 한다. 대우그룹은 1990년대, 중국 과장급 공무원들을 뽑아 미국 대학에 연수를 보내면서 관시를 맺은 바 있다. 대우는 무너졌지만 중국 사업만은 독보적이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중국에 대한 이해가 앞섰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관시는 일정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빨리 일을 처리하려는 우리와 달리 중국은 인간관계도 ‘만만디(천천히라는 뜻의 중국어)’로 접근한다. 만만디가 늑장을 부린다기보다는 실수를 줄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보면 된다. 요즘 중국 기업인들은 술 마시고 노래방을 가서 교분을 쌓는 전통적인 의미의 관시보다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계약하는 방식을 더 선호하고 있다. 보면 볼수록 알 듯 말 듯한 중국의 관시는 사회 변화에 따라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