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기

2015.03.15 20:41 입력 2015.03.15 21:10 수정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 정전기

구름은 없었다. 기미도 없었다.
손잡이를 돌릴 때
스웨터를 벗을 때
몇 볼트인지 모를 전류가 몸을 통과할 때까지
몰랐다. 오늘이 얼마나 평온한지를.

나는 어떤 성질의 짐승일까.
그것도 모르면서 자주 쓸쓸했다.
키스 없이 나를 사랑하며
어중간한 전극 오갔다.
그냥 사랑해서 사랑하고 그냥 살기에 살아가며.

양극을 망설이며 서성이는 동안
나뭇가지는 수십 년을 번개처럼 꺾이며 제 길을 가고 있다.

- 백상웅(1980~)

[경향시선 - 미래에서 온 詩]정전기

△ 세계는 어떤 답변도 내려주지 않고 오직 우리가 그 세계의 비밀들을 언어로 표상할 뿐이다. 언어가 인간과 인간 간의 소통이라는 상투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깥의 세계를 인지하도록 하는 자율성의 원천이라면, 우리는 언어를 통해 진리를 죽이기도 하고 진리를 창조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사물을 다시 만드는 사람이다.

이 시는 건조한 겨울철에 우리가 종종 만나게 되는 정전기를 소재로 삼고 있다. 금속 물질의 손잡이에서 혹은 스웨터를 입고 벗을 때나 털 소재의 직물에서 마찰이 일어날 때. 정전기는 구름도 기미도 없이 일상에서 불꽃을 일으킨다. 그렇게 만나는 뜻밖의 불꽃은 시인으로 하여금 망설이는 자의 정념을 품게도 하고, 자기 스스로에게 ‘짐승’과 ‘사랑’ 사이를 묻는 질문을 내던지기도 한다. 이렇게 한 곳에 오래 은둔해 있던 정지된 힘이란 어쩌면 또 하나의 세계를 여는 모든 두근거림이라 할 수 있겠다. 아무런 부채감 없이도 오래 한 곳을 응시하고 머물러 보는 것. 그런 정지된 상념들을 통해 세계 바깥을 엿보고자 하는 시적 의지가 백상웅 시의 물상론은 아닐까.

언 땅이 조금씩 제 살을 풀어 부풀리는 동안 우리는 또 한 계절을 보내주고 말았다. 그 계절의 건널목 부근에서 “양극을 망설이며 서성이는” 또 한 사람이 있다. 제 안에 번개를 읽어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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