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김일곤을 막으려면

2015.09.23 20:55 입력 2015.09.23 21:00 수정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무고한 여성을 납치해 잔인하게 살해한 뒤 시신마저 훼손한 김일곤. 그의 범행과 살아온 이력은 2010년 8월에 발생한 속칭 ‘양천구 묻지마 살인범’ 윤모씨와 많이 닮았다. 윤씨는 단지 집 밖으로 흘러나온 웃음소리가 ‘행복해 보인다’는 이유로 주말 오후 가정집에 침입해 마구 흉기를 휘둘러 두 아이 앞에서 아빠를 살해하고 엄마를 중태에 빠트렸다.

김일곤과 윤씨는 어린 시절 학대에 시달리다 중학교 때 가출해 공장이나 식당 종업원 등을 전전하다 폭행과 절도, 강도 등 범행을 저지르며 살아온 이력이 똑같다. 게다가 김일곤은 18년, 윤씨는 14년간 교도소 복역 중에 가족을 포함해 단 한 명도, 단 한 차례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

[표창원의 단도직입]제2의 김일곤을 막으려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버려지고 차단된 상태였던 것이다. 교도소 재소 기간에도 이들의 범죄 성향, 분노 등 감정조절 장애, 미흡한 사회성, 부족한 학습능력과 사회 적응능력 등이 교정, 교화, 개선되지 않았다. 교도소 과밀, 교정 예산과 인력 부족, 전문적인 교화 프로그램 미비 등의 고질적인 문제가 너무 심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형기 만료로 출소하기 전에 이들에게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이를 바탕으로 한 보호관찰 및 경찰과의 연계 등 ‘재범 방지’ 장치가 가동되지 않았다.

교도소 안에서의 오랜 자유박탈 경험은 이들에게 ‘다시는 처벌받고 싶지 않다’는 강한 욕구를 만들어 재범 방지를 위한 제동장치 역할을 했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반겨주는 이 하나 없고, 너무 빨리 많은 것이 변해버린 세상은 낯설기만 하고, 전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웃에게서 의심과 경계, 혐오의 눈빛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리 오래지 않아 누군가와 감정적 충돌이 일어나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다시 이들의 공격성과 폭력 습관이 터져 나온 것이다.

우리는 이미 ‘문제가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지난 수십년간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한 방향으로 꾸준히 노력해왔다면, 무고한 피해자들이 아무 이유 없이 이들 ‘반사회적 분노 폭발범’들에게 생명을 빼앗기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국가·사회적 노력만 있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범죄의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속죄의 의미로 우리 정부와 사회는 보상과 치료, 관심과 배려를 한없이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제2, 제3의 유사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김일곤 같은 ‘반사회적 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허물고 개선해야 한다. 아동 학대가 발생하는 위기 가정에 대한 적극적인 사법 및 복지적 개입, 일탈 청소년의 학교 내 수용 및 교화 선도, 범죄 청소년에 대한 실효성 있는 교정과 환경개선책 마련, 교정 여건과 시스템 개혁, 출소 전 위험성 평가와 사후 관리책 마련, 전과자에 대한 사회 내 처우 및 보호와 이웃 공동체와의 공생 방안 도출 등이 그것이다. 그 전체적인 과정과 시스템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김일곤 사건 이후 언론 등에서 제기되는 대책은 ‘우범자 감시 관찰 방안’ 강구다. 경찰이 관내 거주 우범자의 행동과 상태를 감시하고 관찰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장치를 갖추자는 주장이다.

가뜩이나 인력 부족에 업무 과잉에 시달리는 일선 경찰이 법적 근거만 마련된다고 해서, 실효성 있는 ‘우범자 관리’를 할 수 있을까? 강력사건 발생 시 우범자 관리 담당 경찰관에 대한 책임추궁과 징계 등 ‘희생양 만들기’라는 부작용이 우려될 뿐이다.

교도소 출소 전 평가 등 누가 위험한 ‘우범자’인지를 가리는 전문적이고 신뢰성 있는 장치도 없는 상황에서 자칫 ‘전과자 차별’로 인해 이들의 반사회적 분노를 키우기만 할 우려마저 상존한다. 부디 이번만은, 눈에 띄는 반짝 ‘보여주기’ 식 대책보다 종합적이고 구체적이며 실효성 있는 ‘진짜 대책’이 마련되고 시행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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