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져야 할 추석

2015.09.24 21:19 입력 2015.09.24 21:33 수정

추석이다. 진즉에 기혼 여성들은 온갖 심리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을 것 같다. 한 여성에게 들어보니, 추석이 스트레스의 온상으로 바뀐 건 30대부터였다고 한다. 그 전에는 추석은 꽤 즐거운 추억이 많았다고 한다. 나이가 먹으면서 “너 언제 시집가니”로 시작해서 슬슬 고통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추석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친척들이 모이는 차례에 빠졌다. 그러고는 결혼을 해서 그런 말은 더 듣지 않게 되었지만,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며느리로서 치르는 추석 준비는 ‘출산에 버금가는’ 스트레스를 안겨주더라는 것이다.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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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면 TV 리모컨이나 붙들고 있는 내가 할 소리는 아니나 아내가 받는 압박도 사실 모르는 게 아니다. 본디 제사며 차례라는 것은 어느 민족이나 대개 지내던 것이다. 희생(犧牲)이란 말 자체가 짐승을 잡아 조상이나 하늘에 지내는 제사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제사는 <주자가례>를 통해 유교적 전통으로 만들어진 조선시대 이후의 경향이다. 다시 말해서, 꼭 이렇게 제사와 차례를 지내는 것이 단군 할아버지 이래의 ‘움직일 수 없는’ 법칙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 복잡하고 난해하며, 남자들조차 차례 스트레스로 이맘때면 포털에 ‘지방 쓰는 법’ ‘차례 지내는 법’이 실시간검색 1, 2등을 차지해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여자는 음식 해대느라머리털에 기름기가 배어 샴푸도 안 먹을 지경이 되고, 남자들도 놀면 노는 대로 스트레스에 차례 주관의 부담을 지고 사는 게 뭐란 말인가 싶다.

상에 올리는 제수도 그렇다. 집집마다 다 가풍이 있고, 관례가 있겠지만 제사란 본디 ‘옛날 그대로’ 지내는 것을 미덕으로 친다. 그래서 밥을 메라고 하거나 국을 탕이나 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옛날 그대로’ 하자면서 1970년대 이후 일본에서 건너온 게맛살 산적은 왜 올리나. 언제 우리 조상들이 신구 아저씨도 아니고 게맛살 안 드린다고 화를 내셨나. 바나나는 뭔가. 그 게맛살 햄 산적 지지느라 여자들 허리가 휜다. 이미 가스레인지는 다른 요리로 점령당하고 있으니 바닥에 신문지 깔고 전기프라이팬에 하루 종일 전을 지진다. 기름 연기는 생명을 단축시키는 요인으로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햄과 게맛살 넣어서 전을 그렇게 많이 지져봐야 잘 먹지도 않으니, 결국 냉동고로 들어가고, 추석 지나면 언론마다 특집기사를 다룬다. “명절 때 남은 음식으로 처리하는 새로운 요리법 운운.” 이게 무슨 코미디인가.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달라져야 할 추석

기름진 것이 부족하던 시절 기름에 지진 음식은 최고의 제수였다. 지방 과잉 시대에 우리가 그렇게 전을 지질 일은 없다. 어차피 ‘옛날 그대로’ 제사를 지내는 집안도 별로 없지 않은가. 딱 식구들이 맛있게 먹고 나눌 음식만 하자. 그것이 조상이 더 바라는 일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변하고, 추석 분위기도 달라진다. 어찌 되었든 다들 이번 추석에는 모여서 얼굴 보는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명절이라 더 고통받는 수많은 형제들을 생각해주는 것도 이즈음의 덕목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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