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와 목포

2015.10.15 20:56 입력 2015.10.15 21:27 수정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홍어와 목포

최근 인터넷에서 가장 불편한 언사가 내게는 음식 이름이다. 홍어나 과메기 같은 것들 말이다. 먹는 건 죄가 없다고 했는데, 수준 낮은 정치적 공격과 저열한 편가르기에 음식이 동원된다. 김치녀, 된장남이라는 말도 나 역시 구역질이 난다. 그것이 그럴듯한 비평의 그늘에 숨어 이미지가 고착되는 건 정말로 무서운 일이다. 나치에 의해 유대인의 베이글이 배척받은 역사가 떠오른다. 일본인도 예외는 아니다. 김치나 마늘에 대한 그들의 집요한 멸시는 이미 식민지배의 상처로 남아 있다. 오히려 당대에 일본인들이 더 즐기는 소 내장 요리(호루몬야키)는 오사카의 일본인들에 의해 더러운 자이니치에게 퍼부어진 모욕의 상징이었다. 시궁창에 버린 소 내장이나 주워먹는다는 ‘호루몬’이라는 말이 ‘버려진 것’이라는 뜻이니 말이다. 이탈리아 사람을 업신여기는 말 중에는 ‘마카로니’가 있었다. 이탈리아가 가난하던 시절에 받던 모욕이다.

음식으로 집단과 민족 정체성의 상징을 만드는 건 고약하다. 스스로 자긍심 삼아 그렇게 부르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개는 혐오와 배척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목포에 다녀왔다. 목포는 홍어로 유명하다. 사실 홍어가 목포만의 음식은 아니다. 서해안 일대에서 두루 나던 어물이다. 멀리 백령도에서도 많이 잡혔다. 그러나 목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미지와 함께 홍어의 본토로 자리 잡았다. 홍어는 본디 흑산도에서 많이 난다. 이것이 목포에서도 먹고, 영산포를 통해 나주로, 또 광주로 들어가면서 전라도 서남해안의 대표 음식이 되었다. 흥미로운 건 역시 홍어의 숙성이다. 흑산도에서는 거의 삭히지 않은 신선한 회 상태가 인기 있고, 목포는 그 중간이며, 나주는 푹 삭힌 것이 더 대접받는다는 것이 정석이다. 영산강을 따라 북상하며 홍어가 스스로 숙성되었으므로 그 종착지인 나주에는 아주 푹 삭힌 것이 도달했다는 뜻이다. 냉장과 교통이 발달한 요즘은 이런 구별이 의미 없다. 목포에서도 기호에 따라 삭힘을 달리한다. 항아리에 소나무 놓고 볏짚 깔아 숙성한다는 말은 옛말이다. 대개는 김치냉장고 같은 저온 냉장고로 숙성을 조절한다. 그 덕에 6개월 이상 천천히 숙성시킨 홍어를 맛볼 수도 있다. 홍어는 숙성도에 따라 각기 맛이 다르다. 겉절이처럼 신선한 놈도, 묵은지처럼 아주 푹 삭은 것도 제각각 별미를 낸다.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홍어와 목포

목포 원도심은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젊은이들은 포구 외곽에 새로 개발된 신도시로 떠나거나, 아예 대도시로 떠났다고 한다. 노인들만 원도심을 지키고, 값이 비싼 홍어를 사먹는 사람들은 대개 명성을 듣고 온 관광객이다. 현지인이 즐기던 홍어가 이제 박제되어 상업화된 추억의 음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1980년부터 원도심에 작은 주점을 열고 홍어를 팔아온 손춘석 선생(70·덕인주점)은 “이제 우리가 더 늙어 가게를 닫으면 홍어의 전설도 접을 때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혀를 찬다. 홍어잡이가 그다지 소득이 없어서 흑산도 홍어배는 열 척이 안된다. 국내에서 팔리는 홍어의 원산지에는 러시아와 중국, 미국, 우루과이 같은 나라가 다 망라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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