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설 70주년, 경찰의 과제

2015.10.21 20:48 입력 2015.10.21 21:02 수정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1945년 10월21일, 해방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불어닥친 이념대결과 사회분열로 정부조차 제대로 구성하지 못하는 혼란의 와중에 ‘국립 경찰’이 창설됐다. 이후 경찰은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며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호국경찰’, ‘안보경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1950년 7월18일, 밀어닥친 북한군에 맞서 온몸으로 방어선을 구축하던 충남 강경경찰서 경찰관 83명이 모두 산화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1998년 ‘국민의 정부’ 수립 이후엔 ‘국민의 안전지킴이’로 탈바꿈하기 위한 또 다른 노력을 경주했다. 지난 3월, 복통을 호소하는 어린이를 구하기 위해 헬기를 타고 전남 신안군 가거도를 지나던 해경 소속 4명의 경찰관이 희생된 것도 이런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표창원의 단도직입]창설 70주년, 경찰의 과제

그동안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잃은 경찰관 수만 1만3000여명이 넘는다. 하지만, 경찰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 일부에는 ‘싸늘함’이 자리 잡고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국격을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뜨린 3·15 부정선거의 적극적인 동조자였고, 이에 항거하는 시민과 학생들을 탄압하다 4·19 항쟁을 야기한 주범이었으며, 평범한 대학생이던 박종철과 이한열 등을 살해하며 민주주의의 싹을 자른 것도 경찰이었기 때문이다. 북한과 자연재해, 범죄와 맞서 싸울 때는 국민의 든든한 지킴이지만, 정부와 시민의 대결 등 ‘정치적’인 대치 상황, 혹은 정부기관과 집단 민원인, 경영진과 노동자 등 ‘강자와 약자’의 대결 상황에는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강자의 편’을 든다는 의혹과 의심의 여지를 제공해 온 탓이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 용산 참사 피해자 가족, 쌍용자동차 사태 피해 노동자 가족,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한과 절규가 대표적이다. 같은 분노와 불만이 범죄 피해자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오원춘 사건 피해자 유가족과 대구 성서초 다섯 어린이 피살 암매장 사건 피해 유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까지 내며 경찰에 대한 분노를 쏟아낸 대표적인 사례다. 성폭력과 강도, 살인 등 강력사건은 물론, 가정폭력과 데이트폭력, 스토킹 등의 ‘권력적 폭력범죄’의 피해자들과 잠재적 피해자들 중에는 경찰의 무관심과 소극성을 원망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반대로, 극우와 극좌의 이념적 광란의 패거리들과 취객, 감정조절 장애 운전자들은 직무를 수행하는 경찰관에게 폭행과 폭언을 마구 쏟아낸다. 권력과 언론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경찰 수뇌부는 일선 경찰관들을 닦달해 문제를 막고 감추려고만 한다. ‘검은 권력’의 힘을 믿고 대낮 올림픽도로에서 1차선 주행이라는 범법을 자행한 국정원 버스 운전자가 교통경찰관의 면허증 제시 요구에 “그런 것 없다”며 배짱을 부릴 수 있는 배경에도 같은 문제가 존재한다.

미 국무장관 힐러리의 차량 불법 주차에 엄정한 단속의 칼날을 내리친 영국 런던의 주차단속원처럼, 현역 국회의원의 손에 수갑을 당당히 채우는 이탈리아 경찰관처럼 법을 집행하려던 그 교통경찰관은 국정원 직원이 한참 동안 귓속말로 주절거린 뒤에 씁쓸하게 직무를 포기하고 돌아서야 했다. 국정원보다는, 그들의 요구를 전달받은 경찰 상부의 태도가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일선 경찰관에게는 매일 마주치는 시민들의 믿음이 힘이고 권한이다. 그 믿음은 결코 비 오는 날 우산을 나눠주고, 공짜로 펑크난 타이어를 갈아주는 등 ‘직무와 관련 없는 친절’로 만들 수 없다. 경찰관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동영상을 올리고 미담 기사를 뿌리는 언론플레이로 조성되지 않는다.

경찰 수뇌부가 어떤 권력이나 언론의 부당한 지시와 요구,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엄정하고 중립적인 치안유지와 법집행의 원칙을 지켜내고, 일선 경찰관 한 명 한 명에게 자율과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제대로 된 교육과 훈련, 공정한 인사관리,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업무시스템을 확립할 때 비로소 찾아오는 것이다. 시민은 ‘공정하고 전문적인 경찰’을 원하지 친절과 웃음을 파는 ‘감정노동자 경찰’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경찰 창설 70년, 새로운 도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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