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범준 유감

2016.04.15 20:53 입력 2016.04.15 20:56 수정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

고속열차 KTX를 타고 여수엑스포역에 내리면 여행 필수코스의 하나로 ‘여수 밤바다’를 내건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여수 바다 야경이 주는 낭만적인 멋은 오래전부터 회자되어 왔지만 관광객 유치 차원에서 여수시 지정 공식 명소로 된 것은 분명 그룹 ‘버스커버스커’의 곡 ‘여수 밤바다’ 덕분일 것이다. 대중가요의 광대한 영향력이다. 이 그룹의 또 다른 히트작 ‘벚꽃 엔딩’으로 가면 그 파괴력은 더 커진다.

[임진모 칼럼]장범준 유감

2012년에 나온 이래 해마다 벚꽃 시즌만 되면 어김없이 울려퍼지며 음원차트 상위권에 오른다. 버스커버스커를 이끈 장범준은 이 곡으로 지금까지 46억원의 저작권료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누구 말대로 벚꽃연금이다. 이후 ‘봄 사랑 벚꽃 말고’ 등 이 곡의 자장에서 벗어나거나 넘으려는 무수한 곡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올 벚꽃축제를 구경한 사람들이 질리도록 접한 곡은 역시나 ‘벚꽃 엔딩’이었다.

버스커버스커를 중단하고 개시한 솔로 활동에서도 장범준은 호응의 측면에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존재감은 각별했다. 방송활동이나 행사 출연을 거절하면서 음악에 매진하는 태도는 조금이라도 더 비치려고 애쓰는 딴 가수들과 대조를 이뤘다. 얼마 전 그가 CD 두 장으로 된 솔로 두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1만장만 한정해 찍었지만 앨범은 순식간에 동났고 마니아 소장 욕구를 불지르면서 인터넷 개인 직거래 마켓에선 원래 2만원짜리가 12만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장범준은 TV 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해 솔로 활동은 ‘음악공부’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위상을 가꿔준 키워드라고 할 ‘음악에 대한 진지함’이 배어난다. 그런데 여기까지다. 곧이어 <무한도전>에 나와서 한 발언은 음악 관계자들 사이에 언어도단의 평지풍파를 불렀다. 고정출연자 박명수가 그의 연주를 듣다가 노래들이 비슷하다고 하자 대뜸 “제가 자가복제가 좀 많아요”라고 말한 것이다. 잠시 흘린 말일 수도 있지만 그렇고 그런 아이돌 댄스음악의 범람 속에서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해온 음악가의 말로서는 아주 실망스럽다. 예술가의 기본이 새로운 영역으로 나가는 실험과 도전에 위치함을 거리낌없이 부정하는 발언이다. 변화와 혁신을 꾀하지 않으면 예술가는 복잡한 자아를 표현하지 못하며 대중에게 다양성을 전할 길이 없다.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안정’을 향하는 자가복제는 아티스트에게 독으로 작용한다.

아닌 게 아니라 신보의 ‘사랑에 빠졌죠’는 나오자마자 ‘여수 밤바다’의 코드 진행과 닮아 거의 표절 수준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한 앨범 기획자는 “장범준은 새로운 것, 다른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 모두 없어 보인다”며 퇴행적 변화불감증을 성토했다. 자가복제가 결코 지나가는 말이 아닌 것은 “시도보다는 기대만큼 만족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라는 장범준 자신의 토로로도 알 수 있다. 즉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대중의 기호에 충실히 봉사하겠다는 뜻이다. 자기복제는 성공 공식에 매몰된, 상업적 숭배 마인드의 일그러진 발현이다.

작곡자는 때로 ‘성공한’ 곡의 진행 스타일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한 유명 작곡가가 “솔직히 대중의 검증을 훌륭하게 거친 히트송의 코드워크를 반복하고자 하는 유혹에 시달린다!”고 고백한 게 기억난다. 이전 방식을 답습하면서 “그게 내 스타일!”이라고 강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이란 점으로 접근하는 자기복제의 수명은 짧다. 지금의 장범준은 뭘 해도 잘되지만 앞날은 모른다. 실적에 매달리고 현실에 안주하면 어느 때에 가서는 대중의 심판을 당한다.

우리가 흔히 일컫는 음악계의 전설들은 신곡과 신보를 낼 때마다 시도와 혁신을 거듭해 반짝 영예의 굴레에서 벗어난 인물들이다. 음악가가 자기복제에 발을 담그면 결국 순수의 산물이라 할 초기작으로 끝이 난다. 아무리 지속적으로 새 음원을 내놓아도, 게다가 순간 잘 팔려도 사람들이 데뷔 때의 노래만 기억하면 괴로운 일이다. 장범준 하면 기억되는 곡이 ‘벚꽃 엔딩’과 ‘여수 밤바다’뿐이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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