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송 페스티벌’의 꿈

2016.05.20 20:48 입력 2016.05.20 20:51 수정
임진모 ㅣ 대중음악평론가

유럽의 음악축제라고 할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관해 얘기하면 상당수 어른들이 ‘아직도 그걸 하나?’라는 반응을 보인다. 1970~1980년대에는 이 대회의 수상 결과가 국내 신문에 게재될 만큼 인기와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언제부턴가 우리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졌다. 하지만 유럽의 방송연맹이 주최하는 이 행사는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을 넘어 여전히 유럽권에서는 ‘빅 이벤트’로 각국에 생중계된다. 1956년에 시작해 올해로 61회.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거행된 올해 대회에는 42개국이 참가했고, 2억명 이상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임진모 칼럼]‘아시아 송 페스티벌’의 꿈

평상시에는 시큰둥하다가도 ‘국가 대항전’에는 뭐든 눈을 붉히는 게 인지상정이듯 출전 개별국가들의 음악적 자존심이 발동하고 그것이 각국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경쟁력을 잃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과거 클리프 리처드와 올리비아 뉴튼존도 영국 대표로 출전해 순위 싸움을 벌였다.

스포트라이트는 덜했지만 이번 대회에서 주목할 사항은 오스트레일리아 대표로 출전해 당당히 준우승을 차지한 ‘임다미’라는 인물이 한국계 이민자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는 폭발적인 가창력을 발휘해 현장 점수로는 거의 우승이었다고 한다. 국내 TV프로 <복면가왕>에도 출연해 우리 시청자들에게도 낯설지는 않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음악을 통한 유럽 공동체라는 비전, 제1의 세계라는 자긍의 산물이다. 이 대회가 시작된 1956년에 미국에는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가 출현했다. 솔직히 이 한방으로 유럽음악의 전성시대는 끝이 났다.

펄펄 날던 프랑스의 샹송, 이탈리아의 칸초네, 포르투갈의 파두 그리고 영국의 민요는 미국의 로큰롤과 팝송에 밀리기 시작했다. 특히 1960년대 비틀스 이후 영국이 미국과 합을 이뤄 앵글로 색슨 문화의 세를 불리면서 가히 ‘팍스 아메리카나’의 형국이 펼쳐졌다.

미국이 문화적 패권을 구축한 그때,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싹쓸이 기세로 밀려드는 미국 음악의 파고를 막고 견디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 우리의 경우도 비틀스의 로큰롤, 카펜터스의 팝이 맹위를 떨치던 그 무렵에도 ‘유럽의 유행음악’을 듣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정규 라디오 프로그램 청취율이 웬만한 팝송 프로에 뒤지지 않았다. 식자층 회합에서는 미국의 팝을 부르는 것보다 샹송과 칸초네를 뽑는 것이 우월한 취향으로 인식됐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배출한 프랑스 갈의 ‘꿈꾸는 샹송인형’과 모세다데스의 ‘에레스 투’ 같은 비(非)영어권 노래가 라디오 전파를 타면서 널리 알려졌다. 어쩌면 유럽 지역의 대중음악이 세계인들의 정서에서 나름의 지분을 유지한 데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한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시아가 그 힘을 몰랐을 리 없다. 아시아태평양방송(ABU)이 중심에 나서 ‘아시아판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를 기획해 마침내 1985년에 ABU 가요제가 열렸다. 국내에서도 구창모와 정수라 듀엣, 민해경이 출전해 대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시아 국가들이 총집결하는 완전체 대회로 발전하지 못한 데다 가요제라는 형식미가 퇴조하면서 결국 1991년 대회로 마감하고 말았다. 아시아의 음악축제가 어쩌면 가장 필요한 때가 지금일지도 모른다. 엠넷이 주최하는 아시안 뮤직 어워드(MAMA)가 국내 시상식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라는 타이틀 아래 마카오, 싱가포르, 홍콩에서 개최해오고 있는 것도 아시아 비전에 대한 욕구인 셈이다. 세계 인구의 43%에다 지속적인 국내총생산(GDP) 상승으로 앞으로 아시아가 대륙의 주도권을 쥐게 될 전망임을 감안할 때 ‘아시아 송 페스티벌’은 필수적이다.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한국의 K팝도 단독이 아닌 아시아 속에서 파괴력을 축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참가한 음악축제에서 우리 가수들의 후련하고 힘에 넘치는 가창의 유전자를 증명해야 한다. 장르 다양성 압박에 시달리는 K팝에도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이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준하는 아시아 음악 페스티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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