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논쟁

2016.07.07 20:50 입력 2016.07.07 20:52 수정
이정우 |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논의가 노사 간 입장 차이로 난항을 겪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생기고 나서 이런 난항은 연례행사처럼 반복돼온 현상인데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그저께까지 열 차례 회의를 했는데도 노사 간 입장은 좁혀지지 않는 모양이다. 사측은 올해 최저임금인 시간당 6030원으로 동결하자고 하고, 노측은 1만원으로 인상하자는 주장인데 현재까지 쌍방이 한발짝도 양보하지 않고 있다.

[시대의 창]최저임금 논쟁

그야말로 팽팽한 기싸움이다. 어느 한쪽이 합리적으로 양보하는 것이 대승적 자세로 존경받기는커녕 오히려 상대방에게 약점을 잡히는 것으로 간주되는 한국적 풍토가 있다. 이런 풍토 속에서 많은 경우 협상은 지지부진하고 막다른 골목에 가서야 어렵사리 타결되는 수가 많은데, 최저임금도 그 예외가 아니다. 최저임금을 정하는 법정 시한이 다음주이니 예년의 경험에 비추어본다면 아마 내주에는 뭔가 결말을 보기는 할 것이다.

과연 노사 어느 쪽이 옳은가? 글쎄. 양쪽 다 동의하기 어렵다. 6030원 동결은 말이 안되고, 그렇다고 갑자기 1만원으로 인상하는 것도 과하다. 정답은 그 중간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 적정 수준을 찾는 것이 최저임금위원회의 임무인데, 석 달 동안 회의를 하면서 그 범위를 조금도 못 좁히다가 결국 마지막 주에 돌발 결정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가 협상하는 태도나 기술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쯤 보다 합리적하고 온건한 협상 방식을 볼 수 있을까.

과거 경제학 교과서는 최저임금제도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 기업에 추가적 인건비 부담을 주기 때문에 기업 측의 노동수요를 감소시켜 실업을 일으키는 부작용이 있다고 가르쳤다. 최저임금이 올라 노동자의 처지가 개선되는 반면 일부 노동자들은 실직이라는 큰 대가를 치르게 되므로 일장일단이 있는 제도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이런 논리에 입각해 재계와 보수 학계의 최저임금 혐오가 심해서 다른 나라보다 훨씬 늦은 1987년에야 비로소 이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최저임금을 보는 경제학계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미국의 연구에서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실업이란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크기는 걱정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 거듭 밝혀진 것이다. 그 뒤 미국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훨씬 적극적 태도를 갖게 됐다. 빌 클린턴은 1996년 대통령 재선 공약으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내걸었고, 그것이 공화당의 공격을 받는 바람에 큰 선거 쟁점이 되기도 했다. 결국 재선에 성공한 클린턴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 약속을 지켰다. 그 뒤 오바마 역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최저임금을 크게 올린 대통령은 클린턴과 오바마 두 사람이다.

최저임금은 정권의 영향을 받는다. 미국에서 민주당 대통령 때는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고, 공화당 대통령 때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김영삼·이명박 대통령 때는 최저임금이 조금밖에 오르지 않았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 많이 올랐다. 친기업적 이명박 대통령이 등장하자 재계에서는 호기를 만났다는 듯이 최저임금의 삭감을 주장하기도 했으니 최저임금이 정권에 따라 얼마나 좌우되는지를 알 수 있다.

피케티의 책 <21세기 자본>을 보면 프랑스와 미국의 최저임금을 비교하는 대목이 나온다. 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미국이 프랑스보다 훨씬 높았는데, 지금은 프랑스가 미국보다 훨씬 높으니 최저임금은 국가와 정권의 성격과 직결됨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평균임금의 30% 수준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편이라 인상 여지가 상당히 있다. 지난 20년간 세계적으로 불평등 현상이 심해지면서 중산층, 서민이 소득이 없어 상품을 사지 못해 불황이 더욱 장기화하는 터라 최근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러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경제위기 타개책으로 최저임금의 적극적 인상에 나서고 있다.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 상품을 살 구매력이 생겨 경기가 살아나는 선순환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권장하는 포용적 성장, 혹은 임금주도 성장의 원리다. 지금 한국 재벌들은 700조원이 넘는 사내유보금을 쌓아둔 채 투자를 기피하고, 장기간의 소득 양극화로 중산층과 서민은 허리가 개미처럼 가늘어져 시장에는 냉기가 감돈다. 그러니 재계에서도 최저임금의 비용적 측면만 보고 인상에 손사래를 칠 것이 아니라 임금이 갖는 수요적 측면, 즉 경제활성화 효과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물론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은 실업을 일으키므로 금물이지만 앞으로 몇 년간 최저임금의 적극적 인상을 고려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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