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향욱’의 나라에서 민주공화국으로

2016.07.17 20:42 입력 2016.07.18 10:16 수정

[하승수의 틈]‘나향욱’의 나라에서 민주공화국으로

얼마 전 지하철에서 낯선 분이 아는 척을 했다. 본인이 예전에 재벌그룹 핵심부에서 근무했었다고 말했다. 십수년 전 그곳에서 일할 때 당시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던 나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내가 활동하던 시민단체가 그 재벌그룹의 불법행태를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분은 그 후에 다른 외국계 기업으로 옮겼다가 부당해고를 당해 소송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얘기 중에 그분은 자신이 경험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부족국가’라고 말했다. 그분이 말한 ‘부족국가’의 의미는 기득권을 가진 족속들끼리 해 먹는 국가라는 것이다. 본인도 거기에 기여한 것이 아닌가하는 자책도 하는 듯했다. 자신이 예전에 살았던 모습도 돌아보면 떳떳하지 못하다고 토로했다.

그분과의 우연한 만남 이후에 ‘부족국가’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 ‘나향욱’이라는 교육부 고위 공무원의 발언을 접했다. 그는 그가 속한 1%의 부족이 나머지를 지배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의 잘못은 그 진실을 입 밖에 낸 것이다.

그래서 그가 파면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기쁘지 않았다. 수많은 또 다른 ‘나향욱’들이 대한민국의 입법·행정·사법·언론·대기업·대학 등에 깔려 있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나향욱’들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결정을 자기들 마음대로 한다. 나머지 99%의 사람들은 그저 따르기만 하는 통치대상으로 본다. 특히 서울에서 떨어져 있는 변방의 주민들은 자신과 다른 ‘2등 국민’으로 본다. 그래서 원전이든 송전탑이든 사드든 자신들이 밀실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국가공동체를 위해 과연 그것이 필요한지를 토론하는 것도 회피한다. ‘나향욱’들이 가끔 변방의 2등 국민들 앞에 나타날 때에는 ‘모양새’를 만들기 위해 필요할 때이다. 다 결정해 놓고도 얘기 들어주는 시늉만 하면, 2등 국민들은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달걀이나 물병을 맞거나 욕을 듣는 일이 발생하면, ‘감히 자신들의 권위를 훼손했다’고 생각하고 공권력으로 보복하려고 한다. ‘나향욱’들은 결코 자신들이 저지르는 반민주적인 독선과 전횡을 성찰할 줄 모른다.

‘나향욱’들은 자신들의 집 앞에는 절대로 원전, 송전탑, 사드가 들어설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반면에 자신들과 다른 2등 국민들은 당연히 그것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로만 같은 ‘국민’이지, 실제로는 다른 계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향욱’들을 비판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도 ‘나향욱’인 이들도 있다. 특권은 같이 누리면서 입으로만 비판을 할 뿐이다. 대한민국의 ‘나향욱’들은 1%의 자신들을 어떻게든 나머지 99%와 구분짓고 싶어 한다. 그래서 99%는 쓰지 못하는 ‘눈먼 돈’을 쓰고, 99%와는 다른 차량을 타고, 다른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른 출입문을 사용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을 구분짓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나향욱’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향욱’을 보며 자존감을 훼손당한 우리에게 묻고 싶다. 언제까지 ‘나향욱’들이 만들어놓은 규칙에 따라 경쟁하고 압박감을 느끼며 살 것인가? 그들이 만들어놓은 노동법과 최저임금을 받아들이고, 그들이 결정한 원전과 송전탑, 사드, 토건사업들을 받아들이기만 해야 하는가? 투표 때면 그들이 만들어놓은 답안지를 놓고 ‘차악’을 고민하고, 평상시에는 그들이 당연시하는 불평등과 격차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 것인가?

‘나향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민주주의이다. 그래서 그들은 결코 시민들에게 결정권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혐오와 차별, 공포를 무기로 99%를 조종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 땅의 ‘나향욱’이 아닌 사람들에게 제안한다. 우리의 자존감을 위해 이제는 ‘나향욱’들의 지배에서 벗어나자. 시작은 특권을 폐지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1%의 특권들은 실질과 상징 모두 폐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향욱’들이 두려워하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년은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30년이 되는 해이다. ‘나향욱’들의 나라를 만들려고 30년 전에 그 많은 사람들이 피땀을 흘린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는 ‘나향욱’들이 결정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시민들이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정치기득권을 깨는 선거제도 개혁, 관료기득권을 깨는 고시제도 폐지 등 행정개혁, ‘눈먼 돈’을 없애는 예산개혁이 필요하다.

공식 권력에 있는 ‘나향욱’만이 아니라, 거대자본과 언론에 있는 ‘나향욱’들을 통제하고 견제하는 것도 필요하다. 내년에 대선에 나오겠다는 정치인들이라면, 이런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만 맡길 것은 아니다.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라면 뭐든 해야 할 것이다.

‘나향욱’들의 나라를 민주공화국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와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은 일시적 분노의 폭발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행동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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