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과 테니스

2018.12.20 20:57 입력 2018.12.20 21:02 수정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서울 용산구 갈월동 전 치안본부 대공분실 모습, 1991년 1월14일, 경향신문사

서울 용산구 갈월동 전 치안본부 대공분실 모습, 1991년 1월14일, 경향신문사

사진 속 높은 건물의 5층을 보자. 유난히 창문이 좁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예 창문을 없앤 것도 아니고, 겨우 팔 하나 들어갈 좁은 창문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 건물은 남영동 대공분실로 통했던 치안본부, 5층은 고문실로 사용됐다.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숨을 거둔 509호에도, 김근태 전 의원이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했던 515호에도 저 좁은 창문으로 한 줌의 햇빛이 들어왔다. 사람이 사람에게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당해도, 햇빛과 하늘은 변함없이 반짝였을 것이다. 아예 창문을 없애 세상과 단절되는 것보다 감질나게 보이는 세상에 더 모욕적인 고립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5층에는 창문만 작은 것이 아니다. 방마다 욕조도 120㎝에 불과할 정도로 작다. 당시 백형조 치안본부 대공5차장은 “피의자가 피곤할 때 쉬고 목욕하기 위한 것”이라고 뻔뻔한 거짓말을 했다. 쉴 수도 목욕할 수도 없는 욕조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고문을 위한 것이다.

건물 전체가 고문용인 남영동 대공분실에는 수사관들을 위한 테니스장도 있었다. 한쪽에서는 고문을 하고, 또 한쪽에서는 테니스를 하는 장면은 지독한 부조리극 같다.

이곳이 다음주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이관이 되어 민주인권기념관이 조성될 예정이다. 부디, 온몸으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증언하는 이곳이 온전하게 보존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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