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캐슬’이 말하고 싶은 것

2019.01.25 20:44 입력 2019.01.25 20:49 수정

독일의 문호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인간답게 사는 것을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매일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시 한 편을 읽으며, 훌륭한 그림 하나를 보는 것. 게다가 가능하면 ‘이치에 맞는 말 몇 마디’면 충분하다. 사실, 잘산다는 게 별 건가?

[세상읽기]‘SKY캐슬’이 말하고 싶은 것

그런데 21세기의 우리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갈수록 많이 경험한다. ‘내 땅에 아파트 짓겠다는데 당신이 뭐냐’며 주변의 문제제기를 묵살하고,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사유재산이니 국가가 사용료를 내라’는 시장 논리도 위풍당당 활보한다. 일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민주노총에 ‘법치나 경제를 망치는 암적 존재’란 낙인이 떨어진다. 내가 보기에, 사람과 자연을 무참히 파괴하는 돈벌이 중독 경제야말로 암적 존재다.

이치에 맞는 말을 하며 살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배워야 한다. 교육이 중요한 까닭이다.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및 성적 조작 충격이 엊그제 같은데 그 비슷한 내용을 다루는 드라마 <SKY캐슬>이 관심을 끈다. 이치에 맞는 말도 있지만, 인간됨을 부정하는 말도 많다.

일례로,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닦달하여 반드시 SKY의대에 넣고 싶은 엄마가 있다. 아이는 엄마가 밉지만 자식으로서 거부하기 힘들다. 번뇌하는 아이에게 고액 과외교사(코디)가 이런 취지로 말한다. “엄마에게 제대로 복수하려면 이를 악물고 SKY의대에 합격하라. 그 합격증을 엄마에게 선사한 뒤 엄마가 기뻐하는 그 순간에 엄마를 버려라. 상대가 웃는 바로 그때 큰 절망을 안기는 것이 최고의 복수다.” 복수와 증오를 학습 동기로 삼다니, 사람 사는 이치가 아니다.

일류대 강박증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르는 부모들을 용감하게 골려주는 ‘가짜’ 하버드대생도 있다. ‘가짜’임이 밝혀지자 부모, 특히 평생 승승장구한 아빠는 멘털 붕괴이지만, 정작 본인은 당당하다. “남들이 알아주는 게 뭐가 중요해?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지.” “엄마아빠는 날 사랑한 게 아니라 하버드생 ○○○를 사랑한 거겠지.” 아마 괴테가 말한, 이치에 맞는 말 몇 마디란 바로 이런 것일 게다.

세상은 피라미드처럼 생겼기에 한사코 높은 곳으로 올라야 잘살 수 있다고 확신해온 부모에게 아이가 말한다. “세상이 왜 피라미드야? 지구는 둥근데 왜 피라미드냐고!” 또, 친구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는데, “이 기회를 틈타 내신 성적을 올려라”고 말(?)하는 부모에게 아이가 말한다. “○○는 내 친구라고요, 내 친구! 친구가 억울하게 잡혔는데 지금 내신등급 올라가게 공부만 하라고요?”

기성세대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하는 건 아니다. “사막에서 사람이 쓰러지는 건 갈증이나 더위 때문이 아니라 조바심 때문이래요.” “경쟁은 자기 자신하고 하는 거지. 남과의 경쟁은 사람을 외롭게 만들거든. 외롭지 않은 인생을 사는 게 성공이야.” 맞는 말이다.

어른이건 아이건 이치에 맞는 말과 아닌 말, 모두 한다. 핵심은 인간(생명)의 가치를 저버리고 경쟁(자본)의 가치에 심신을 내맡기느냐 여부다. 경쟁의 가치란 상품의 가치, 화폐의 가치다. 물론 <SKY캐슬>은 이런 말을 직접 하진 않지만 이게 사태의 본질이다.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의사나 SKY를 강요하는 어머니도, 그 부모 말에 순종하며 최고가 되고자 애쓰는 자녀도, 실은 그 내면에 거듭 상처(트라우마)가 쌓인 존재들이다. 이들이 그 상처를 딛고 건강하게 일어서지 못하면, 피해의식의 포로가 된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두려움에 다른 편으로는 열등감에 시달리며, 생존전략으로 ‘강자 동일시’ 심리를 내면화한다. 희생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이치다.

2018년에 나온 ‘서울대 학생복지 보고서’에 따르면, ‘목숨 걸고’ 들어간 서울대에서 그 재학생들은 2명 중 1명꼴로 우울증을 겪는다. 일반적으로 ‘스카이’에 다니는 학생들은 진정 행복하거나 눈에 빛이 날 듯하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기대를 배반한다.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니면 결국 병든다! <SKY캐슬>이 말하지 않지만 말하는 것이다. 실은 부모와 아이들이 ‘목숨’을 걸 때부터 불행은 예고된다. 왜냐면 정작 걸어야 하는 것은 목숨이 아니라 자기만의 꿈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꿈이 나 혼자 출세하기, 부자 되기가 아니라 공생, 공감, 공존의 원리를 담아낼 때 자신과 사회의 행복에 기여한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은 <발언II>에서 “이른바 잘난 사람,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들, 권력자들일수록 타인의 고통과 불운에 대한 무관심 내지 둔감성은 유별나다”고 했다. 자신의 고통조차 억압해 온 탓이다. 피라미드 질서를 당연시한 채 앞만 보고 달릴 때 우리 스스로 얼마나 인간적 퇴행을 하는지 <SKY캐슬>은 고발한다. “병원장이 아니라 그냥 어머니 아들로 충분하지 않은가요?”라는 중년 의사의 고백은 자기 해방 선언이다. 한 번뿐인 인생, 스스로 만든 감옥을 탈출해 자유를 향유하라. ‘캐슬’에 안 살아도, 외롭지 않게 사는 게 성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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