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사실, 해석

2019.02.20 20:57 입력 2019.02.20 20:58 수정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공청회’에서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했던 발언으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 자리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었다”거나 “종북 좌파들이 5·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집단을 만들어내서 우리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같은 당 고위 당직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역사와 현실]사건, 사실, 해석

세간의 논란과는 별도로 역사 연구자 입장에서 이번 사건은 흥미롭다. 논란 과정에서 나온 말들이 매우 역사철학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사건’ ‘사실’ ‘해석’ 등은 역사 연구의 핵심적인 개념들이다. 이런 단어들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책에 한 장씩을 차지해야 마땅한 개념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이 현재의 우리에게는 ‘사실’로 인식된다. 과거의 ‘사건’ 그 자체는 이미 현재에 재현될 수 없다. 이것이 역사학이 연구 대상을 현재 이곳에 가져와서 재현할 수 있는 자연과학과 다른 이유이다. 현재는 과거의 그때 그곳에서 그런 ‘사건’이 있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과거에 대한 사실은 실재했던 ‘사건 자체’라기보다는 현재 ‘인식된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가 달라지면 인식된 과거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미 완료되어 버린 과거가 현재의 영향으로 다른 사실이 될 수 있다. 1894년에 일어났던 ‘동학농민전쟁’을 예로 들어보자.

‘동학농민전쟁’은 발생 당시에는 ‘동학란’이라 불렸다. 이 이름은 당시 조선 조정이 그 사건을 바라보던 관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동학이라는 불순한 종교집단이 정당한 정부를 상대로 일으킨 반란이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린 이상 그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은 마땅히 진압되고 섬멸되어야 한다. 하지만 ‘동학란’은 오늘날 ‘동학농민전쟁’이 되었다. ‘난’이 ‘전쟁’이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앙정부와 ‘갑오농민전쟁’의 주체들은 정당성 면에서 누가 더 우위에 있지 않다. 사실 ‘난’이 ‘전쟁’이 되는 과정은 왕의 나라인 ‘왕국’이 국민의 나라인 ‘민국’이 되는 과정이다.

‘사실’이라는 것은 얼핏 명백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논쟁적인 영역이다. 의미심장한 것은 ‘사실’의 변화 양상이 공동체 자체에 의해서 유도되고, 나아가서는 공동체 그 자체를 구성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조선시대 세조 2년(1456)에 ‘사육신 사건’이 일어났다. 널리 알려졌듯이 이 사건은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사건이다. 당시 사육신들의 행동은 너무나 당연했다. 조선은 건국 이후 다른 어떤 것보다 교육에 힘썼다. 오늘날 우리가 공교육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교육받듯이, 그들은 유학 이념을 교육받았다. 그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이 바로 임금에 대한 충성이다. 이 때문에 뚜렷한 잘못이 없는 단종을 폐하고 수양대군이 임금이 된 것은 그들의 가치관 안에서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가 불가능했다. 그 상황을 받아들이려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느니 그들은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다.

당연히 사육신 이외에도 그들과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 중 일부는 현직에 남았지만, 또 일부는 조정에서 물러나 은거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런 사람들 중에 ‘생육신’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사육신이 그들의 죽음과 함께 확정된 사실이라면, 생육신은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떠오른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생육신은 나중에 조선왕조 정부에 의해서 그들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또 기려졌다. 이것은 조선왕조가 왕의 나라에서 왕과 유교지식인들 모두의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공동체는 그 공동체에 상응하는 역사적 사실을 갖는다는 점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한국 현대사를 가르는 분기점이다. 건국 이후 이 사건 이전까지 국가권력은 몇 차례 대규모로 국민을 살해했다. 그래도 큰 문제는 안 됐다. 왜냐하면 당시의 국가권력은 국민이 만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헌법에 어떻게 규정되었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법은 그 법을 만든 주체의 힘의 크기만큼만 작동하게 마련이다. 1948년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된 것이 아니라, 되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한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 특별한 것은 이 사건으로 국가가 자국민을 죽이는 것이 더 이상 용납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1980년대 한국에서 학생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던 것은 이념서적이나 북한의 영향 때문이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당시 대학생들은 유신시대에 성장했지만 민주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교육받은 사실상 해방 이후 첫 세대이다. 1980년 광주는 군인이 민간인을 학살하면 안 된다는 그들의 상식을 정면으로 부정한 사건이다. 건국 후 한 세대가 지나서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규정이 비로소 현실이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광주사태’를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바꾼 것은 대한민국 그 자체이다. 우리가 치매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기억을 잃기 때문이다. 기억된 사실이 바로 나 자신이듯, 공동체가 기억하는 사실이 바로 공동체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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