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와 법 기술자

2019.10.25 20:25 입력 2019.10.25 20:26 수정

지난 몇 개월 동안 한국을 강타한 ‘조국정국’ 덕분에 법을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과연 법은 달랑 투표권 한 장의 권한밖에 없는 민초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억울함을 호소하는 마지막 단계는 법이다. 대법원, 검찰청, 경찰청 등 법을 수호하는 조직의 최고권력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약자들을 보호하는 정의의 편에 서겠다’고 다짐한다. 그럼에도 사회는 약자들의 아우성이 흘러넘친다.

도로공사 본사에서 반백일 가까이 농성하고 있는 톨게이트 수납원들의 고통에 대해 법은 아직도 묵묵부답이다. 대법원이 직접고용을 명령했음에도 본사는 무시했다. 을지로위원회의 중재로 완화는 되었지만, 여전히 총체적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희망버스 행렬이 이어진 지난 5일, 연대자들과 함께 농성현장에 들어갔다. 눈물바다가 되었다. 대부분 여성들이었다. 힘없는 자들의 연대에 가슴이 미어졌다. 분노와 함께 속으로 “법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외쳤다. 법집행자들이 말하는 약자가 비명을 지르고 있음에도 실제 이들 공무원은 강한 자의 눈치만을 따른다.

[사유와 성찰]사회적 약자와 법 기술자

법집행자들은 선출직이 아니므로 오히려 백성의 입장에서 공평하리라는 기대감이 크다. 그러나 이처럼 현실은 정반대다. 보라. 법전문가들은 그들 나름의 카르텔을 견고하게 유지한다. 현 국회의원의 약 20%가 판·검·변호사 출신, 수십년 동안 대법관 80% 이상이 서울대 출신, 언제나 검사집단의 50% 이상은 스카이 출신이다. 과연 법은 어디로 굽겠는가. 법을 만드는 사람,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같은 동네 같은 기술자라면 명약관화하지 않겠는가. 눈치 빠른 예비 법전문가들에게 지방대 로스쿨은 서울로 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하다. 주고받는 권력판은 서울인데 굳이 연줄 없는 ‘지잡대’에 있을 이유가 있는가.

법전문가는 법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여긴다. 의사들이 자신들만의 언어로 처방전을 쓰듯이 이들 또한 자신이 갈고닦은 언어로 특수영역을 구축한다. 선출된 권력은 선거에서 국민의 결재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은 거의 제한 없는 면허증을 갖는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진나라의 법가인 상앙과 한비자 또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전쟁으로 구축한 나라는 법기술자들이 접수한다고. 그러나 이들은 제명을 다하지 못했다. 법의 한계를 목숨으로 증명한 것이다.

법전문가들은 국민이 합의한 헌법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그들이 본분을 다한다면, 이 나라가 사법기관 하나 가지고 그렇게 떠들썩하지는 않을 것이다. 법은 헌법에 기록된 국민의 인권, 자유, 평등을 지키는 도구에 불과하다. 법집행자들은 야만으로부터 공동체의 선박을 지키는 갑판원에 불과하다. 선장의 명령에 따라 배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법이 만능일 수 없다. 이 사회의 질서 유지에 얼마나 많은 윤리와 도덕과 전통가치와 종교가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는가. “이제 법으로 해결하자”고 외치는 순간 모든 인간관계는 파탄이 난다. 법은 인간을 통합하지 못하고 분열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니 법은 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 독재정권 때 판검사들은 그 권력 유지를 위한 하수인 노릇밖에 더했는가. 그것은 법의 유전자 때문이다. 섬겨야 될 진짜 주인에게 고통을 준 죄과를 통렬히 참회하지 못하는 것 또한 그들에게 사과나 사죄의 전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대할 수도 없다. 근접한 용어가 있다면 양심이다. 그것도 오히려 면죄부일 뿐이다. 법집행자들에게 바란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연설 내용 중 “더 정의로운 나라를 위한 공정”이다. 그는 “공정이 바탕이 돼야 혁신도 있고 포용도 있고 평화도 있을 수 있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교육·문화 전반에서 공정이 새롭게 구축돼야 한다”고 했다.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법은 어느 쪽을 먼저 살펴야 하는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헌법재판관 알비 삭스는 헌법이 법률가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인간 존엄성주의에 기초한 접근법이라고 본다. 그럴 때 비로소 빵에 대한 권리와 자유에 대한 권리를 하나로 묶어준다고 한다. 그의 저술 <블루 드레스>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통합해가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그 위원회의 힘은 집단적 연대정신인 ‘우분투’ 전통이며, 근본적으로 인간성과 도덕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하여 그는 자신의 판결 속에 자비와 연민을 넣을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개개인 연대의 조약인 헌법에서 다수와 소수,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는 모두 주체다. 마땅히 법수호자들은 헌법계약자의 위치마저 상실하며 질식해가는 후자를 위해 삶의 현장에 달려와 자신의 따뜻한 피를 먼저 공급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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