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크기

2019.11.25 20:44 입력 2019.11.25 20:46 수정

어릴 적 어른들한테서 들었던 말은 이랬습니다. “나라 전체에 산이 70%이고, 여기서 농사할 땅 떼고 공장 지을 땅 떼고 나면 사람 살 땅이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나라다.” 정말 그럴까요? 이 땅 곳곳을 여행 다니고, 때때로 해외도 나가면서 우리가 정말 작은 나라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반나절 생활권이라고 부르지만, 실상 움직여 보면 서울~부산, 서울~광주는 만만찮은 거리입니다. 신의주~부산은 그 부담이 2배, 목포~회령은 또 그 2배 정도 부담이 커지겠죠. 무엇보다 표준어를 제대로 배운 외국인이 지역마다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해 고생하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그다지 흔하지 않습니다.

[세상읽기]생각의 크기

“스위스가 작은 나라라고 생각하세요?”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스위스 건축가 춤토어가 던진 질문입니다. “다리미로 산을 쭉 펴면 유럽에서 제법 큰 나라입니다.” 답은 이랬다고 합니다. 이 말을 한국 분이 들었고, 아마 우리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스스로를 작은 나라라고 생각해 왔을까요?

저는 생각의 차이가 땅 크기에 대한 생각의 차이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물리적인 땅의 크기가 중요한 생존의 요소라고 하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공간의 크기를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정도로 측정할 수 있는 시절은 지나고 있습니다. 정보를 생성하고 저장하고 나누는 사이버 공간이 예전 곡식을 재배하고 저장하고 교환하던 땅보다 더 중요한 자산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작은 부족이었던 몽골이 세계를 지배한 배경에는 역참이라는 통신망과 그 사이를 잇는 신속한 교통수단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정보 공간과 물리적 공간을 아우를 수 있는 공간 개념을 ‘생각’이라고 봅니다. 인류는 오랜 시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약탈과 전쟁을 부른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물리적인 경계를 가지지 않는 소중한 무엇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꽤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습니다. 지금 세상에 진정 중요한 자산은 땅의 크기가 아니고 사회에 축적된 정보의 양과 그 정보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는 뛰어난 혁신 기술을 만들고도 그 혜택을 널리 퍼트리지 못한 때가 많았습니다. 금속활자 인쇄술이 대표적입니다. 측우기도 있습니다. 최근 사례를 보면, 인터넷 전화서비스, 휴대용 MP3 플레이어는 우리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상용화했습니다. 페이스북과 비슷한 아이러브스쿨이나 싸이월드가 이 땅에서 먼저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이 세상 처음’이라는 타이틀을 붙일 만한 괜찮은 상품이었습니다. 이런 괜찮은 혁신이 왜 우리 땅에만 머물다가 사라져간 걸까요?

그간 세상읽기 칼럼을 통해 저는 곁에 있는 것부터 소중히 여기자고 말해 왔습니다. 남의 나라, 남의 것 쳐다보기 전에 내 것, 우리 주변에 있는 것부터 관심을 가질 때입니다. 이제는 그래도 됩니다. 나에게 좋고, 남에게도 좋은 일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나에게 좋은 것을 발명하고 창작했다면, 그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쓰고 즐길 수 있도록 퍼트릴 생각을 해야 합니다. 15세기 유럽의 인쇄술이 담당했던 역할이기도 합니다.

금속활자가 이 땅에서 태어날 때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과학적이고도 배우기 쉬운 한글로 소통하며 광범위하게 정보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최적의 인터넷 통신 환경을 이용해 그 정보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혁신 기반을 쌓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금속활자 인쇄술과 같은 세기의 발명을 한다면, 그 혜택은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류에 뻗어나가리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스스로 왜소하다고 생각하면 그 정도의 역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우리의 자산은 생각의 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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