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2019.12.02 20:29 입력 2019.12.02 20:30 수정
박래용 논설위원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53)은 86그룹의 상징이다. 재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당 사무총장에 대통령비서실장 경력 등 정치적 무게로 치면 86그룹 중 가장 비중 있는 인사다. 내년 총선은 어디에 출마할지가 관심사였을 뿐, 3선은 대권 가도로 진입하기 위한 몸풀기쯤으로 여겨졌다. 그런 그가 “제도권 정치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왜 그랬을까. 모두 궁금해했지만, 제3자의 전언과 추측만 무성할 뿐 정작 본인은 침묵하고 있다. 임 전 실장은 언론과 일절 접촉을 피하고 있다. 불출마 선언 열흘 뒤인 지난달 26일 저녁 그를 만났다. 그는 홀가분하고 편안한 표정이었다.

[박래용 칼럼]임종석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 왜 정치를 떠나겠다고 결심한 건가.

“2000년 만 34세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오래전부터 50대 중반쯤엔 정치를 그만하고 싶었다. 정치는 나 말고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다. 그게 통일운동이다.”

- 전격적이었다. 언제 결심했나.

“불쑥 결심한 게 아니다. 특히 최근 국면을 거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인간의 품격이라고 할까,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조국사태’를 ‘최근 국면’이라고 표현했다. 조국사태를 겪으며 86 진보 꼰대들의 이중성, 위선, 언행 불일치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그는 국회 운영위에서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청와대 내 운동권 출신 인사들을 비난하자 “대부분 인생과 삶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다. 의원님이 말씀할 정도로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했다.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건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자부했는데,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말처럼 들렸다. 조국 법무장관 지명은 그가 청와대를 나온 뒤의 일이다. 바깥에서 그는 조국 법무장관 기용에 부정적이었다. 그는 이전에도 조국은 법무장관으로 갈 게 아니라 총선에 출마해야 한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

- 종로 지역구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것도 한 요인이었나.

“지역구 때문이 아니다. 사실 이대로 가면 종로 공천 가능성은 60% 이상이었을 것이다. 괜히 정세균 의장에게 불똥이 튄 것 같아 미안하다.”

- 총선을 건너뛰고 서울시장 후보로 갈 계획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서울시장도 제도권이다. 이번에 그것도 함께 버린 거다.”

- 불출마 선언이 86용퇴론에 불을 붙인 셈이 됐는데.

“86 출신 다른 의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까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집사람에게 그 고민을 얘기했더니 각자가 감당할 몫이라고 하더라.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 누구와 상의한 적이 있나.

“아무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의 갈등설도 나온다.

“아무런 갈등이 없다. 양 원장은 2016년 나를 문재인 후보 캠프로 끌어들인 사람이다.”

- 총선 때 여기저기 지원 요청이 올 텐데.

“정치를 떠난다고 했는데 지원 유세를 나가는 건 이상하지 않나. 딱 자르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 통일운동은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가.

“남북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에 한계가 있다. 통일이 먹거리요, 일자리요, 성장이다. 2004년 설립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통해 남과 북이 공동 이익을 볼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갈 계획이다.”

- 그런데 북한 관계가 풀리지 않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기대 이상으로 내놓았다. 핵·경제 병진정책에서 핵을 내놓기로 결심하고 군부를 어렵게 설득해 왔다. 미국은 북한 문제를 풀려는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 빼고는 아무도 없다. 백악관·행정부·의회·언론 모두 북한을 불량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들은 불량집단과 무슨 딜(deal)이냐고 한다. 이대로 내년 봄 키리졸브 훈련이 재개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 3월까지가 매우 중요한 시기다.”

그는 현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유재수 감찰중단 의혹에 대해 “누가 윗선이 나 아니냐고 물어보더라. 난 유재수의 유자도 모른다. 그런 보고를 받은 적도 없다”고 했다. 우리가 만났을 때는 김기현 울산시장 선거 건이 불거지기 전이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친박계 공천’으로 몰락했다. ‘친문계’인 임종석의 불출마는 그와는 정반대의 길이다. 주류의 자기희생은 향후 여권이 가차없는 인적쇄신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통일 관련 얘기를 많이 했다. 나는 통일과 정치가 다른 영역인가, 물에 금을 긋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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