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에도 물러설 수 없는 이들

2020.02.04 20:45 입력 2020.02.04 20:47 수정

그가 일하는 곳은 중국 산둥반도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해안 도시다. 그가 나고 자란 한국 해안 도시에서 비행기로 5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중국 사무실로 간 지 1년이 넘었지만, 너무 바빠서 도시 구경할 틈도 없었다는 그는 설 명절에 집에 돌아와 차례를 지내자마자 짐을 꾸렸다. 중국 정부가 우한을 봉쇄하고, 각국은 고립된 자국민 귀환을 추진하고 있다는 기사가 인터넷으로 시시각각 올라오고 있었지만, 그는 중국으로 가야 했다. 그를 걱정하는 이들은 손 세정제와 마스크를 잘 챙기라는 말밖에 할 게 없었다. 그의 부모는 중국 지도를 펼쳐놓고, 딸이 있는 도시가 우한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가늠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이미 태평양을 건너고 대륙을 가로질러 무서운 기세로 퍼져나가고 있는 판인 걸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자꾸 지도를 들여다봤다. 그런 부모를 두고 딸은 어렵게 구한 손 세정제를 몇 개 챙겨 의연하게 중국으로 떠나며 말했다.

“바이러스가 퍼져도 일은 해야죠.”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전염병에도 물러설 수 없는 이들

산다는 건 엄중하다. 바이러스 때문에 물러설 수 없는 게 삶이다. 일년 내내 지하철역 앞에서 어느 날은 개업한 식당 전단을, 어느 날은 헬스장 전단을 나눠주는 노인은 월요일 아침 어김없이 전단을 한 묶음 손에 든 채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점심시간 내내 북적거리는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는 마스크 안 쓰셔도 괜찮으냐는 말에 희미하게 웃었다. “손님들 마주하면서 계속 쓰기가 힘들어서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마스크 쓰는 게 번거롭다고 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지도가 만들어지고, 확진자의 동선이 상세히 밝혀진다고 해도 그곳에 일터가 있어 피할 수 없는 사람들. 아침이면 또다시 일터로 나가야 하는 사람들. 전염병이 창궐해도 비켜설 수도, 멈춰 설 수도 없이 부단히 이어져야 하는 삶은 서글프다. 그저 모두 별일 없이 아침을 맞길, 이국땅에 사는 이들도 잘 이겨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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