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연정’이 더 당당하다

2020.03.16 20:47
박래용 논설위원

사실은 소설보다 기구하다. 김무성·유승민·권성동·김성태·홍준표는 태극기 세력에 ‘탄핵 5적’으로 찍혀 왔다. 미래통합당은 그들을 모두 물갈이했고,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은 “시대의 강을 건넜다”고 자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옥중에서 보수세력의 대동단결을 지시했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탄핵을 결정한 지 꼭 3년 만이다. 정치권은 ‘탄핵세력 대 촛불세력’ 구도로 재편됐다. 보수야당은 ‘탄핵의 강’을 되돌아갔다. 비례 위성정당을 코미디 같은 정치라고 한다면 희극인에 대한 모독일 것이다. 보수야당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막장 드라마는 장인과 사위가 서로 사랑하는 시나리오 빼고는 다 나왔다. 숨이 넘어가던 탄핵 세력은 아무런 반성도 쇄신도 없이 대반격을 시작했다. 막장 드라마 뺨치는 반전이다.

[박래용 칼럼]‘개혁 연정’이 더 당당하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개혁세력의 위기를 자초했다. 시민들은 촛불혁명에서 분출된 에너지를 융합해 ‘1987 체제’를 뛰어넘는 제도적 변화를 기대했다. 그러나 ‘2017 체제’는 만들지 못했다. 시민들은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밀어주며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새로운 대한민국은 만들지 못했다. 그사이 시민들은 진영으로 나눠 광장에서 부닥쳤다. 진영논리는 팩트(사실)를 녹여 철퇴를 만들었고, 그 철퇴로 반대의견을 척살했다. 정치는 시민의 앞에 서지 못하고 뒤에서 추종했다. 정치는 실패했다.

그런 민주당이 전국선거 4연속 승리에 도전하고 있다. 인물도 정책도 메시지도 없다. 이번엔 문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 표를 달라고 한다. ‘앵벌이 선거’다. 민주당은 상대에겐 가짜, 속임수, 도둑질이라 비난해놓고 똑같이 비례정당 참여를 선언했다. 탄핵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가능하다. 현실적으로 탄핵은 불가능하다. 불의한 권력을 탄핵한 자칭 촛불정당이 거꾸로 ‘탄핵 공포’ 운운하며 징징 우는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총선은 단순한 의석수 계산으로 준비할 게 아니다. 20대 국회는 최악의 동식물 국회였다. 21대 국회마저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 보수야당 1호 공약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폐지다. 그렇다면 여당은 탄핵세력의 반격에 맞서 개혁연대를 발전시키는 큰 그림을 내놓는 게 필요하다. 그건 총선 이후 새로운 정치질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담대한 구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21대 국회의 콘셉트는 협치와 통합, 연대여야 한다. 지난 국회에서 어떠한 개혁도 협치 없이는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지겹도록 보아오지 않았는가. 정치적 세력분포로 보면 다음 국회에서도 민주당 혼자서 모든 것을 하기는 힘들다. 그를 위해서는 정의당, 민생당과의 연정 또는 제도화된 연대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은 임기 초반 여러 차례 협치 내각을 추진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노회찬 환경부(정의당), 김성식 산자부(안철수계), 이종훈 노동부 장관(유승민계) 같은 제안은 의미 있는 정치적 실험이었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총선 후 야당 인사 가운데서 해당 부처의 정책목표에 공감한다면 함께할 수 있다”고 거듭 확인했다. 협치내각 구상이다. 협치내각은 협치를 위한 야권 인사의 입각을 뜻한다. 범여권에 속하는 야당과의 소연정(小聯政)을 의미하는 것이다. 협치내각은 새로운 길이며 공존의 기회일 수 있다. 선의의 힘을 합쳐 큰 정치를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나.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특정 정당의 지역독식을 깨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다당제에 기반한 연정 등 협치의 제도화를 꿈꿨다. 그 꿈은 미완의 상태다. 문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정치문화가 달라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감이 떨어지길 기다릴 수는 없다. 정치가 달라지기를 바란다면 뭔가 해야 한다.

총선은 이제 한 달 남았다. 여권은 정치력을 키워야지 숫자로 국회를 지배하려 해서는 안된다. 비례대표를 몇 석 더 얻겠다는 낡은 선거공학이 정치일 수 없다. 개혁세력은 패스트트랙 연대를 성공한 바 있다. 그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다. 여당은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총선 이후 진보정당과의 연정을 선언하고 시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편이 낫다. ‘촛불 거버넌스’를 어떻게 구축하겠다고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는다면 금상첨화다. ‘4+1 연대’, 소연정, 개혁연대…. 명칭은 뭐든 좋다. 21대 국회는 연합정치로 문을 열겠다고 선언해 보라. 그게 탄핵을 막기 위해 표 달라는 것보다 훨씬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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