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 정치는 달라져야 한다

2020.04.06 21:12 입력 2020.04.06 21:20 수정
박래용 논설위원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BC(Before Corona·코로나 이전)와 AC(After Corona·코로나 이후)란 새로운 연대가 등장할 정도다. 한국의 방역대책은 국제적 모범사례로 세계에 공유되고 있다. 한 지인은 말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데 고속도로변 졸음쉼터 자리마다 119 구급차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방역 매뉴얼이 이런 데까지 치밀하게 짜여 있나 놀랐다.”

[박래용 칼럼]‘포스트 코로나’ 시대 정치는 달라져야 한다

미국·유럽 등 이른바 선진국에 머무르던 교민·유학생들이 코로나를 피해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시민의식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외신은 “생필품 사재기가 없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했다. ‘사재기 패닉’이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정부에 대한 신뢰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바이러스 가해자는 없다. 모두가 피해자다. 한데도 보수야당과 언론은 정부가 가해자인 양 몰아세웠다. ‘우한 폐렴’이란 명칭을 고집했고, 감염병 전문가에 ‘비선’ ‘사회주의자’란 낙인을 찍었다. 친중국으로 색깔론까지 제기했다. 그러나 한 달 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시민들은 중국 입국자를 일찍 차단했던 나라에서 코로나가 대규모로 확산하는 현실을 보고 우리나라 방역정책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보수언론의 ‘문재인 정부 방역 실패’ 프레임은 깨졌다. 공포는 무지와 혐오를 확산시킨다. 높은 시민의식은 ‘인포데믹’(정보 전염병)도 차단시켰다.

이번 총선은 ‘코로나 선거’다. 정책도, 인물도, 메시지도 안 보인다. 모든 이슈가 코로나에 빨려 들어갔다. 후보자와 유권자의 접촉은 사라졌다. 명함 돌리기도 힘들고, 얼굴 알리기도 어렵다. 지역에 누가 나왔는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연히 선거는 정당 중심 투표를 할 수밖에 없다. 완벽한 공중전이다. 제공권은 여야 사령탑에 크게 좌우된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55%로 치솟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50% 이상이면 정권심판론은 희미해진다. 여당은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내일 당장 투표한다면 압승”이란 얘기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야당 복’에 ‘코로나 복’까지 얹어졌다.

보수야당은 황교안·유승민에 안철수까지 힘을 합쳐 ‘반문 연대’를 성사시켰을 때만 해도 선거는 보나 마나라고 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미래통합당은 자력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혁신과 감동, 비전과 전략, 오너십이 없는 ‘5무(無) 야당’의 한계일 수밖에 없다.

세계적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폭풍은 지나갈 것이고 인류는 살아남을 테지만 그러나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 것이다”라고 했다. 중세는 14세기 흑사병을 정점으로 막을 내렸다. 유럽은 흑사병 이후 경제·상업·군사·사회 전반에서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었다. 흑사병은 근대로 가는 길목이었다.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2020년, 전 세계는 불확실성을 뛰어넘어 초불확실성 시대를 눈앞에 맞았다. 코로나가 그 문을 열었다.

총선 이후 최대 관심사는 코로나 이후 달라진 세상이 될 것이다. 이번 총선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끌고 갈 리더를 뽑는 선거다. 하나로 연결되었던 세계는 지구촌 분열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글로벌 위기의 깊이와 규모는 가늠하기 어렵다. 앞으로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전례 없는 변화를 겪으며 미래의 희망을 찾아야 한다.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시민들은 상생과 공존의 정신을 실천했다. 의료공백을 메우러 사지로 달려갔고 건물주는 자영업자의 고통 분담을 위해 임대료를 깎아줬다. 한국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시민들의 자발적 협력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코로나를 극복하고 있다. 코로나 위기에 살아가는 대한민국 시민의 생활은 세계 시민의식의 표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시민은 100점인데 정치는 여전히 낙제점 수준이다. 진영 논리와 지역주의는 더 강해지고 있다. 미래에 대한 얘기는 들리지 않고 온통 과거로 회귀하는 이슈뿐이다. 팍팍한 시민의 삶과 무관하고, 생산적이지도 못하다. 거대 양당의 선거 전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다 의석을 차지하느냐에 맞춰졌다. 유권자들은 꼼수 위성정당들 사이에서 기권하거나 찍거나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이번 총선은 후보들이 아니라 유권자들이 시험에 빠진 이상한 선거가 됐다. 결국 또 한번 시민이 정치를 끌고 갈 수밖에 없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정치는 달라져야 한다. 이번 선택은 새로운 세상의 변화를 결정지을 것이다. 21대 총선은 4년마다 돌아오는 그저 그런 총선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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