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9월 신학기제 논의

2020.06.01 03:00 입력 2020.06.01 03:06 수정

코로나19 사태로 개학과 등교가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우려 속에 강행하는 이유가 ‘입시’ 때문이라는 게 참으로 씁쓸하지만 교육부의 입장도 이해된다. 밑도 끝도 없이 ‘교육이 썩었다’는 말만 하는 사람들은 마치 지금이 기회인 것처럼 입시가 좀 어그러지면 무슨 대수냐면서 싹 다 바꾸자고 하지만, 우리는 그게 어그러지면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도록 세팅된 안타까운 사회에서 살고 있다.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시험 점수에 목숨 건 만큼 진학의 가치가 달라지고 이 결과가 인간의 생애 전체를 관통한다는 건 괴기스러운 현실이지만, 소소한 개인들은 일방적인 룰로 가득한 공간에서 단지 버티면서 오늘을 살며 내일을 기대할 뿐이다. 이들이 ‘기존의 그릇된 현실을 개혁’한다는 명분으로 희생양이 되어선 안 된다. 사회를 바꾸는 건 장기호흡이다. 개혁의 이유가 납득돼야 하고 변화의 강도와 속도가 합의돼야 한다. 그렇지 않은 설레발은 높은 분들에겐 과감한 실험이자 행정력을 키울 경험이고 한편으론 주목받기 위한 정치적 행보이겠으나, 실험실의 쥐가 된 사람들에겐 삶이 뒤틀리는 악몽에 불과하다.

개학을 두고 옥신각신하더니 ‘9월 신학기제’라는 황당한 담론이 불쑥 등장했다. 다른 유행병이 창궐할 때마다 신학기가 달라질 수 없으니 논의 대상도 아니다. 3월 개학으로 사회가 혼란에 빠진 적이 없었으니, 유학 갈 때 해외와 학제가 달라 고생 어쩌고의 말은 ‘저 사람들 또 저러네’라고 애써 웃어넘길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신처럼 여유로울 수 있다고 착각하는 건 자랑이 아니다.

오랫동안 고정된 시간대에 따라 살던 사람의 생애가 갑자기 6개월 ‘뒤로’ 밀리면 일부는 인생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치명타를 입게 된다. 약속된 시간에 맞춰 제때 독립해야 할 사람의 홀로서기가 늦어지면 얽혀 있는 여럿이 무너진다. 2020년에 대학에 입학해 2025년에는 집에서 독립을 해야만 했던 누군가의 시간이 강제적으로 지체되면 그 6개월간 늘어난 가계의 빚 때문에 평생이 뒤틀어질 수 있다. 2021년 2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사람이 연장된 6개월 사이에 겪는 일들이 언제나 무탈할 리 없다. 졸업자 신분이었다면 이겨낼 수 있는 상황이 학생이기에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생각했던 전공을 바꾸기도, 대학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다. ‘원래라면 졸업했어야 할’ 사람이 집안 걱정에 인생에 한번 올까 말까 하는 기회를 포기할지 누가 알겠는가.

어떻게든 아이들 고등학교 때까지는 책임지기 위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대학 4년은 지원하기 위해 온몸을 바쳐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학원비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밤에도 물류센터에서 일하며 버텼는데, 추가된 6개월 때문에 산재사고를 겪거나 전염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면 이 빌어먹을 운명은 누가 책임지겠는가.

무례한 신학기제 논의는 경제가 바닥을 치는 혼란스러움 속에 등장했으니 기가 찬다. 이미 ‘약속된’ 시간도 보장해줄 수 없는 상황인데, 엎친 데 덮치자는 발상이다. 자신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고 세상의 평균치로 모두를 이해해선 안 된다. 절벽에 매달린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전염병을 막을 수 없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포기하자’는 방역지침은 오늘만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에겐 죽으라는 말과 다름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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