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권 전환 이대로는 안 된다

2020.06.15 03:00 입력 2020.06.15 03:05 수정

한·미 간 비대칭적 관계가 형성되는 직접적인 계기는 전작권 때문이다. 한·미의 비대칭적 관계는 대외정책, 특히 중국과 북한 문제에서 도드라진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리에게 중국 견제에 참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에 등을 돌리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것도 결국은 전작권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대북정책에서 독자성을 상실했다. 남북 간의 모든 교류와 협력을 ‘한·미 워킹그룹’이 통제하는 것도, 결국 근본적인 원인은 전작권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으로 현 정권이 대북정책 결정과정에서 역대 어떤 정권보다 미국에 종속적이었다는 비난을 회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설 예비역 육군준장·순천대 초빙교수

한설 예비역 육군준장·순천대 초빙교수

우리가 전작권을 직접 행사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문제는 군사 분야를 넘어 대외정책과 경제 등 우리 삶의 전 영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의존적 사고방식이 내재화’되면서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지부조화 현상이다. 우리나라 식자층 중에서 우리가 손해라도 미국에 이익이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유독 많은 이유다.

전작권 전환에 가장 반대하는 집단은 예비역 장성들이다. 그들의 반대는 자신의 특권적 삶이 미국의 후원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미국이 전작권을 단독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한·미가 공동행사하고 있다는 주장은 말장난에 불과할 뿐이다.

전작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피해를 가장 많이 직접적으로 당하고 있는 곳은 바로 군대다. 군대는 군사력을 양성하고 이를 운용할 수 있는 작전계획을 수립하여 작전지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 군사력은 이미 북한을 압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독자적으로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지휘할 수 있는 능력이 미진한 실정이다.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 창설 시 참모부를 한·미 동수로 편성한 것은, 언제 떠날지 모르는 미군의 작전지휘능력을 신속하게 습득하기 위해서였다. 30년이 훨씬 넘는 동안 한국군은 미군의 보조적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아직도 작전계획수립과 지휘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북한 장교는 모이면 작전과 전술을 논하는데 남한 장교는 인사 이야기만 한다는 자조 섞인 푸념은 군인으로서의 본질과 핵심에 다가가지 못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인사 이야기밖에 없다는 현실의 반영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초급장교를 보유하고 있지만, 중견급 이상 장교들의 능력이 미군보다 한참 뒤지는 것은 계급과 직책에 합당한 고민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집권기간 내에 전작권 전환을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은 전적으로 옳다. 문제는 지금 같은 방식이라면, 안 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한·미가 각자 자기 군대를 지휘하는 방식을 추진했다. 한·미 합참의 공동 지시를 받는 단일사령부가 유지되는 한 실질적인 전작권 전환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연합사를 해체하고 양국 군을 각자 지휘하되, 한국군과 미군이 상호지원할 수 있는 협조체제를 갖추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보수정권 등장 이후 전작권 전환은 없던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은 전작권 전환을 늦추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제시된 ‘조건’은 미국도 제대로 갖추기 어렵다. 이름만 바꾼 연합사를 유지하고 사령관을 한국군이 맡기로 하면서, 연합사가 존재하면 진정한 전작권 전환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참여정부 당시의 고민은 무위로 돌아갔다.

보수정권의 전작권 전환 방식을 비판적인 검토 과정도 없이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 문제였다. 한국군 출신이 연합사령관이 되면 전작권이 전환된다는 주장은 틀렸다. 한국군 출신 사령관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미국의 국가급 자산을 운영할 수도, 미군을 제대로 지휘하기도 어렵다. 지금도 주한미공군사령관은 미군인 연합사령관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 한국군 출신이 연합사령관직을 제대로 수행할 것이라는 기대는 중학교 축구선수가 프로축구팀을 감독할 수 있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다.

집권기간 내에 전작권 전환을 완료하겠다고 하지만 결과가 걱정스럽다. 지금처럼 하면 명분과 실리 모두 손해보고 오히려 미국 의존성만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방향이 틀리면 열심히 할수록 문제가 커진다. 처음부터 한국군 단독작전 능력이라도 제대로 구비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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