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애심 ‘세월이 가면’

2020.12.14 03:00
오광수 대중음악평론가

[노래의 탄생]나애심 ‘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날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이 노랫말을 쓰고, 작곡가 이진섭이 곡을 붙인 노래로, 나애심이 불렀다. 또 현인과 현미, 조용필에 이어 박인희가 부르면서 유명해졌다.

이 곡이 쓰인 배경은 소설가 이봉구의 회고록 <명동백작> 등에 기술돼 있다. 1956년 봄 명동의 동방살롱 맞은편 술집 은성(배우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주점)에서 테너 임만섭이 처음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누군가는 즉석에서 만들어진 노래라고 했지만 두 사람이 꽤 오랫동안 시간을 두고 공을 들였다. 은성의 여주인에게 들었던 애절한 연애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래였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명동 일대를 휩쓸면서 술잔을 기울이던 ‘댄디보이’ 박인환은 곧 요절하고 만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라던 그는 짧지만 강렬했던 삶을 뒤로하고 떠났다.

노래는 가수이자 영화배우인 나애심이 취입해 곧 세상에 나왔다. ‘내 마음을 사랑한다’란 뜻을 담은 그의 예명은 ‘빈대떡 신사’ 한복남이 작명한 것이다. 훤칠한 외모와 블루스풍의 노래로 주목받은 나애심은 ‘백치 아다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 ‘미사의 종’ 등 히트곡은 물론 영화 100여편에도 출연한 걸출한 스타였다. 본명은 전봉선으로 그의 히트곡 대다수를 만든 작곡가 전오승이 친오빠이고, 막내 동생 봉옥도 가수였다. 그는 걸그룹 아리랑시스터즈를 결성해 미8군 무대에서도 활약했다. 가수 김혜림이 그의 딸이다.

노래를 들으며 가슴이 철렁하는 매력이 느껴지는 건 낭만시대를 관통했던 청춘들이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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