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함께 어쩌면 세상은 변곡점을 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경제의 변곡점, 소비의 변곡점, 자본주의의 변곡점, 그리고 생태의 변곡점. 지인과 함께 길을 걷는데 상가의 점포들이 한 집 걸러 하나씩 문 닫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숨 섞인 소리로 지인이 말했다. “채소와 생선가게 같은 집 빼고 이제 공산품 파는 곳은 죄 망해가네요. 도대체 누가 인터넷을 만들었대요? 거기다가 코로나까지 한 방을 날렸으니….” 아침에 ‘알리익스프레스’라는 앱을 스마트폰에 깔고 거기 빠져서 한참 시간을 죽인 나로서는 가슴이 뜨끔했다. 중국의 거대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가 만든 이 플랫폼에는 세상의 거의 모든 물건이 엄청나게 싼 가격으로 올라와 있으니, 누군가의 말마따나 소비자의 ‘개미지옥’이요, ‘악마의 앱’이라 할 만했다.
플랫폼기업이 문제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런 상황은 더 싸고 더 빠른 소비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합세하지 않고서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상품들의 개미지옥에 빠진 소비자를 업고 플랫폼은 생산자와 배송노동자의 출혈을 강요함으로써 거기서 중개수수료라는 막대한 불로소득을 취한다. 소비자들의 취향이라는 것도 사실은 인공지능과 첨단 추적시스템과 신속한 물류에 의해 조종된 결과이고, 깜짝 놀랄 만큼 싼 가격도 결국은 생산자와 노동자에게서 뽑아낸 이득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은 ‘가성비’를 꼼꼼히 따지는 소비자의 계산기 안에는 없는 항목들이다.
소비자의 올바른 행동양식을 생각하자니 랠프 네이더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네이더는 1960년대 미국에서 <어떤 속도로도 안전하지 않다>는 책으로 자동차의 결함을 비롯한 수많은 생산품의 문제를 고발하고, 소비자 보호와 환경 문제에 일대 각성을 일으킨 인물로 유명하다. 그 덕분에 기업 환경과 법적 제도가 크게 개선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가 ‘네이더 돌격대’라는 소비자 행동주의까지 일으키며 한 일이란 게 삐거덕거리는 자본주의 기업시스템에 세련되고 안전한 ‘체제 안의 도덕’을 부여해준 것 말고 무엇이 있을까. 덕분에 기업들은 사회적 역할이라는 면죄부와 장기적 성장이라는 실리를 동시에 얻게 되었다.
대량생산이라는 산업적 이념을 넘어 이제는 안전과 효율의 후기산업사회 이념까지 동시에 성취한 듯 보이는 플랫폼기업의 기초에는 기술 자본주의가 있다. 소비자 취향과 구매패턴과 배송의 최적화된 계산은 낭비를 줄이고 ‘기술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믿음을 실현시켜주는 것 같다. 기술은 이제 전기차, 수소차와 같은 신기술을 통해 우리의 환경 감수성까지 만족시켜준다. 이런 기술의 마력에 취한 소비자들에게는 거리의 매연이 화력과 원자력 발전소의 굴뚝으로 옮겨가고, 정유공장 자리에 중금속 폐배터리가 산처럼 쌓일 미래는 잘 보이지 않는다. 도로 건설과 구매 보조금으로 들어갈 막대한 세금도 신성장 동력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이쯤에서 이반 일리치라는 이름을 다시 호명하지 않을 수 없다. 작고한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이 그 이름을 끊임없이 거론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리치는 실제로 생태주의를 한 번도 거론한 적이 없다. 오히려 공해와 오염과 ‘살충제’를 말하는 환경운동가들을 비웃기까지 했다. 환경오염은 기업의 각성과 안전의 확보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며, 자연을 낭비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성장과 소비 체제에서 나온 부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체제로 인해 환경만 피폐해진 것이 아니라, 자연을 낭비하거나 타인의 삶을 낭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간의 삶까지 피폐해졌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면 ‘쿠팡’과 ‘알리익스프레스’ 앱을 만지작거리고 전기차 가격을 검색하던 나의 손을 멈추지 않을 수가 없다. 거기서 파는 물건들은 내게 처음부터 필요했던 것이 절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