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속의 유령

2021.06.05 03:00 입력 2021.06.05 03:01 수정

안정주·전소정, 기계 속의 유령, 2021, 설치, 단채널비디오, 가변크기 ⓒ안정주, 전소정, 국립현대미술관

안정주·전소정, 기계 속의 유령, 2021, 설치, 단채널비디오, 가변크기 ⓒ안정주, 전소정, 국립현대미술관

음성과 영상을 저장하는 효율적인 장치를 만들기 위해 실험을 거듭하던 연구자들은 테이프를 발명했다. 그 테이프는 기록의 역사에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과거를 구식으로 만들었다. 음악가들은 테이프가 기록하는 거의 모든 소리로부터 리듬, 박자, 음정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전자음악의 세계를 탄생시켰다. 음악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던 소리도 비로소 음악이 되었다.

잡음과 마모라는 숙명적 한계로 혁신의 왕좌를 차세대 저장장치에 물려준 테이프는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박스, 그물망에 가로막혀 볼 수는 있지만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 선풍기 바람에 휘날리는 중이다. 테이프가 본연의 기능과 무관하게 오롯이 사물이 되어 바스락거릴 때, 그 옆 공중에 매달린 자루는 바닥으로 ‘퉁’ 떨어지며 주위를 환기한다. 이곳의 사물들은 그들의 감각기관이 되어준 CCTV로 포착한 장면을 인터넷으로 실시간 송출한다. 전시장에 출연한 드론은 GPS가 없어서 위치 파악이 불가능한 실내 환경에서도 자기 위치를 파악할 뿐 아니라 사람의 눈과 조정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비행하는 법을 안다.

“드론이 자기 위치를 측정하려면 주변에 있는 물체와의 상대적인 거리를 측정해야 한다.” 최첨단 드론 기술을 협력한 카이스트 로보틱스 연구소 심현철 교수의 말은, 인식이란 관계를 파악하는 일임을 상기시킨다.

안정주·전소정의 ‘기계 속의 유령’은 팬데믹 이후 비대면 미디어 경험이 폭증하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기계에 의존하는 인간이 다층적 가치관계 안에서 사물, 자연과 연대하는 시공의 감각을 돌아본다. 언젠가는 과거의 기술이 될지 모르지만, 지금 여기에서는 유효하게 인간을 각성시키는 사물과 기술의 감각은 국립현대미술관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접속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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