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는 내맹쿠로 살지 마래이

지난번 칼럼 ‘여성 삼대’에서 나는 물었다. “온 사회가 지금 같은 ‘정상가족’으로는 살 수 없다고 아우성치는데, 정작 그 ‘문제의 집’을 해부하는 사회학자의 글은 왜 세상에 나올 수 없는가?” 글을 보고 몇몇 출판사에서 연락했다. 출판을 검토하고 싶으니 글을 보내 달라고 했다. 나는 장르도 ‘사회학 소설’이라 낯선 데다가 내용도 할머니-어머니-딸의 ‘연민의 공동체’를 해부하는 것이라 껄끄러울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혹시 하는 마음에 글을 보냈다. 2~3주나 흘렀을까. 짧은 편지가 왔다. 출판사로서 감당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 그렇지. 다 똑같지. 무엇이 다르겠어. 사회학자가 애초에 소설을 쓴 거부터 잘못이지. 논문을 썼으면 벌써 나와도 한참 전에 나왔을 것을. 쯧쯧.’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한탄 비슷한 자책을 하다가 문뜩 왜 내가 논문이 아닌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나 되새겨 보았다. 2005년 가을 부푼 꿈을 안고 대구로 이사를 왔다. 2년 반의 번잡한 서울 강사 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칠 무렵이었다. 면접을 보기 위해 처음 대구를 방문한 날, 교정에 들어서는데 단박에 홀려버렸다. ‘맞아. 바로 이거야. 내가 왜 서울에서 아등바등 살아야 하나. 이렇게 아름다운 캠퍼스를 즐기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행복하게 살아야지.’ 들뜬 마음으로 대구에 온 후, 서울에서 하듯 똑같이 학생을 가르쳤다. 사회학책을 자기 언어로 요약하고, 의미 있는 질문을 하라고 요구했다. 남의 글을 통째로 베껴오는가 하면 어처구니없는 질문들을 가져왔다. 아직 사회학을 잘 몰라서 그러려니 하고 더욱 재촉했다.

그렇게 십 년 이상을 가르쳤다. 그런데 뭐라고 딱 말하기 어려운 이상한 태도가 학생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매사를 느슨하게 설렁설렁. 도대체 이게 뭐지? 막연한 궁금증을 갖고 있던 무렵, 제자의 소개로 기안84의 웹툰 <복학왕>을 보게 되었다. 첫 페이지부터 빵 터져 웃다가 헛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하, 이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만의 현상이 아니구나. 서울공화국에서 밀려난 지방 청년의 보편적인 집단 스타일이구나.’ 깨달음이 왔다. 도대체 이 좁은 땅뙈기에서 서울 아닌 지방에 산다는 이유 하나로 눈물이 날 정도로 희극적인 삶을 살도록 청년을 몰아붙이다니. 화가 솟구쳤다. ‘에잇, 연구 한번 해봐야겠다.’

그렇게 시작된 연구가 <복학왕의 사회학: 지방 청년의 우짖는 소리>로 결실을 보았다. 가족에서 시작해서 (유사) 가족으로 마감하는 지역민의 삶. 가족 밖의 세상에 대해 알지 않으려는 의지로 똘똘 뭉친 ‘보수주의적 가족주의’의 참혹함. 당장 여기저기서 응답했다. 제주도, 강원도, 전라도, 충청도, 심지어 경기도와 서울에서도 강연을 요청했다. 강연을 다니면서 청년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그런데 정작 연구 대상이었던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별반응이 없었다. 철저히 외면하거나, 아니면 지방 청년에 대한 교묘한 혐오라고 비난했다. 시간이 지나면 오해도 풀리겠지, 기다렸다.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갈수록 궁금증이 더해갔다. 어떻게 하다 세상 밖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고 내 가족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 뿌리를 캐보자. 할머니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니는 내맹쿠로 살지 마래이!” 반복해서 나오는 말인데, 딸도 하나같이 엄마와 똑같이 사는 것처럼 보였다. 이 강력한 ‘시스템 복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학자답게 젠더 갈등이라는 좁은 틀을 벗고 ‘친밀성의 구조변동’이라는 보다 큰 역사적 전환으로 보여주리라 결심했다. 책이 곧 나온다. 한 출판사가 용기를 낸 덕분이다. 마주하기 싫지만 마주해야만 하는 현실을 드러내고 싶다고 했다. 그 용기가 헛되지 않게, 이 작은 ‘사회학 소설’이 불쏘시개가 되어 그 ‘문제의 집’에 대한 토론이 우리 사회에 활활 타오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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