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용서의 꽃

2021.12.30 03:00 입력 2021.12.30 03:04 수정

이해인 수녀의 시편지 53회/강윤중 기자

이해인 수녀의 시편지 53회/강윤중 기자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용서하지 않은
나 자신을 용서하기
힘든 날이 있습니다
무어라고 변명조차 할 수 없는
나의 부끄러움을 대신 해
오늘은 당신께
고운 꽃을 보내고 싶습니다
그토록 모진 말로
나를 아프게 한 당신을
미워하는 동안
내 마음의 잿빛 하늘엔
평화의 구름 한 점 뜨지 않아
몹시 괴로웠습니다
이젠 당신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참 이기적이지요?
나를 바로 보게 도와준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아직은 용기가 없어
이렇게 꽃다발로 대신하는
내 마음을 받아주십시오

-시집 <작은 위로> 중에서

해마다 12월이 되면 가장 먼저 읽어보는 저의 시입니다. 100명도 넘는 큰 공동체에 살다보니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소통하는 과정에서 더러 오해가 빚어지고 뒷담화의 대상이 되어 여럿이 주고받은 내용들이 돌고 돌아 저에게 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랑을 이유로 해 주는 직설적인 충고도 때로는 어찌나 아픈 말의 바늘로 사람의 마음을 콕콕 찌르는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나서도 내내 뒤끝이 남아 있고 용서가 안 되는 걸 경험합니다. 더구나 평소에 친밀감을 지니고 더 잘 대해주던 동료나 후배가 무례하고 이기적인 행동으로 저를 대하거나 뒤에서 부정적인 말을 한 것을 알게 되면 즉시 제 마음의 평화가 깨지고 밥맛도 없어지며 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이해인 수녀

이해인 수녀

단순한 용서에도 때로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떤 일로 제 쪽에서 억울하게 생각되어 용서가 잘 안 되는 대상을 만났을 때도 왜 그랬느냐고 힘주어 따지기보다는 그냥 한 번 심호흡을 하고 ‘그 일로 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어요’라고 말해봅니다. 혹시 누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일단 원인 제공은 제가 한 것이니 저도 죄송하지요’라고 말해봅니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 있다면 용서일 것이고 용서 없는 사랑은 거짓일 것입니다. 살아오면서 우리는 거의 날마다 크고 작게 누군가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일, 용서해야 할 일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남에게 누구를 용서해야 한다고 섣불리 강요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그 대신 나 자신이 누구를 용서하는 일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일만큼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라고 말한 시간들 ‘어떻게 그런 일을 용서할 수 있다는 거지?’라고 다른 이의 통 큰 용서를 못마땅해하며 은근히 비아냥거리기까지 한 시간들을 반성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용서의 실천은 우리 자신과 이 세상을 치료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한다. 상처의 진정한 치유는 용서에서 온다. …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자 사랑이다.’ 용서 없이는 행복도 없으며, 용서야말로 가장 큰 수행임을 감동적으로 서술한 달라이 라마의 책 <용서>를 다시 읽어보는 중입니다. 어느 독자가 특별히 좋아한다는 이 구절도 오늘은 더욱 새롭습니다.

‘새들도 쉬러가고/ 사람들은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겸허한 시간/ 욕심을 버리고/ 지는 해를 바라보면/ 문득 아름다운 오늘의 삶/ 눈물나도록 힘든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견디고 싶은 마음이 고마움이 앞서네/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래야 내일의 밝은 해를 밝게 볼 수 있다고/ 지는 해는 넌지시 일러주며/작별인사를 하네.’ -이해인의 시 ‘해질녘의 단상’에서

※ 그동안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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