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의 아픔 끌어안는 오월의 어머니들

2024.05.20 20:45 입력 2024.05.20 20:46 수정

매년 5월18일을 앞두고 광주에 간다. 올해도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함께 참석했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주간에는 다양한 행사들이 광주 전역에서 진행된다. 그중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을 때는 5월17일 밤에 금남로에서 펼쳐지는 전야제 행사다. 옛 전남도청 앞 금남로는 44년 전 시민들이 집회를 하고 투쟁을 했던 곳이다. 그곳에서 집단 발포가 시작된 1980년 5월21일은 부처님오신날이었다. 중생을 고통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부처님의 계율 중에는 불살생(不殺生)이 첫 번째다. 생명 있는 존재들을 존중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세상에 울려 퍼진 그날, 광주는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렇지만 광주시민은 학살에 맞서서 싸웠다. 그해 5월27일까지 광주는 외부로 통하는 모든 도로가 차단되었고, 전화도 끊겨서 고립되었다. 광주의 시민들은 그곳에서 주먹밥을 만들어 나누고, 헌혈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렸다. 서로를 지키기 위해 시민군을 조직하였다. 약탈과 방화는 없었다. 신군부의 학살에 맞서는 저항의 공동체, 대동세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광주시민들이 만들었던 공동체는 5월27일 전남도청이 계엄군에 함락되면서 진압되었다.

우리는 나중에 도청을 사수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죽을 줄 알면서도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던 사람들은 자신이 물러나지 않고 저항했음을 세상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죽었지만, 산 사람들은 그들을 잊지 않았다. 크나큰 부채감으로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고, 민주화의 길을 열어젖혔다.

모두의 오월, 하나 되는 오월

지난 5월17일 금남로 전야제 무대는 세 개가 마련되었다. 민주, 인권, 오월의 세 개 무대에서 다채로운 문화행사들이 진행되었다. 전야제가 무르익어갈 때 도청 앞 무대에 오월 어머니들이 소복을 입고 올랐다. 행사장 맨 뒤에는 노란색 등이 달렸고, 보라색 깃발들이 매달렸다. 노란색은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색이고, 보라색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쓰는 색이다. 그곳에 모인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군중들 사이를 행진해 가운데 무대에 올랐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에워싸면서 품는 형상이었다. 두 참사의 유가족들이 군중들 사이로 행진을 해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도청 무대에서 내려온 오월 어머니들이 그들을 안아주었다. 2015년 5월17일에도 그랬다. “네 맘 다 안다”는 오월 어머니들의 품에 안겨 세월호 유가족들이 울었다.

국가폭력만이 아니라 참사의 아픔까지 끌어안겠다는 오월 어머니들의 모습에서 나만 위로를 받았을까? 올해의 5월 민주화운동행사위원회에서 내건 슬로건은 ‘모두의 오월, 하나 되는 오월’이다. 44년 전 국가폭력을 당한 오월 어머니들이나, 10년 전 참사를 당한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이나, 1년6개월여 전에 참사를 겪은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이나 고통의 한가운데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이 지나온 세월들은 다 같지 않을지 몰라도, 지금도 그들은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다. 44년 전의 5·18도 진상규명 과제가 남아 있기는 마찬가지다. 발포명령자를 특정하지 못했고, 암매장지를 찾아내 유해를 발굴하지 못했다. 그 외에도 많은 과제들이 미해결 상태다. 몇년 전에서야 여성들에게 가해진 성폭력 사건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세월호 참사도 아직 해결된 것보다 미해결의 과제를 더 많이 갖고 있다. 이태원 참사는 이제 진상규명을 위한 첫발을 떼었다.

이번에 광주시민들은 대통령의 기념사에서 ‘오월정신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약속이 담기길 바랐다. 또 지금도 진행 중인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폄훼를 중단하라는 말이 담기길 기대했다. 하지만 이런 광주시민들의 기대는 배신당했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재난 참사들에서도 매번 국가는 믿음을 저버렸다. 국가가 구해줄 거라는 믿음에 대한 배신이었다.

광주는 오월정신 발전시키고 있다

가장 참혹한 학살의 현장에서 피워냈던 대동세상의 꿈은 강렬했다. 도청을 마지막까지 사수했던 시민군들의 저항을 사람들은 기억했다. 그 강렬한 기억이 만들어온 세상은 누구나 공평하게 존중받는 대동세상이 아니었을까? 갈수록 불평등과 차별이 심화되는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정신일 것이다. 헌법 전문에 수록되어야 할 가치로 오월정신을 바로 오월 어머니들이 보여준 것이 아닐까? 광주는 다른 슬픔을 끌어안으면서 오월정신을 발전시키고 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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