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염전의 빛과 그림자

2021.12.31 03:00
이광표 서원대 교수

염전에서 일하는 염부. ⓒ국립민속박물관

염전에서 일하는 염부. ⓒ국립민속박물관

2007년 전남 신안군의 비금도 대동염전과 증도 태평염전이 국가등록문화재가 되었다. ‘천일염의 생산 과정과 그 공간’이 근대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2008년에는 천일염이 광물에서 식재료로 분류되었다. 이듬해인 2009년 어느 TV 뉴스의 한 대목. “나트륨 함량이 낮고 천연 미네랄과 무기질 성분이 풍부한… 건강과 맛을 모두 충족시켜주는… 한 식품업체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전남 신안에서 생산했다는 점을 강조하는가 하면….” 천일염에 열광하던 시절이었다. “자연과 인간이 빚어낸 생명의 꽃”과 같은 문구가 따라다녔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

이광표 서원대 교수

우리나라의 천일염전은 1907년 인천의 주안 지역에 처음 들어섰다. 일제강점기엔 인천·경기지역에 천일염전이 집중되었다. 광복 이후 천일염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남지역에 천일염전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1960~1970년대 인천지역의 염전이 공업단지와 주거단지로 바뀌면서 전남의 염전이 국내 소금 생산의 주력으로 부상했다. 그중에서도 신안지역이 천일염 생산과 염전 문화를 주도했다. 신안의 염전은 국내 천일염 생산의 60% 정도를 차지한다.

비금도의 대동염전과 증도의 태평염전이 대표적이다. 대동염전은 1948년 조성되었다. 당시 인천·경기 지역의 천일염전을 제외하면 최대 규모였다. 대동염전은 신안지역 염전의 성립과 발전의 역사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비금도 주민들이 스스로 염전조합을 결성했고 기술자양성소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기술자양성소에서 배출된 인력들은 인근 섬 지역과 완도, 해남, 무안, 영광, 고창, 부안 등지로 진출해 천일염전 조성 공사에 참여했다. 소금이 불티나게 팔릴 때는 ‘飛金島(비금도)’로 불렸다고 한다. 돈이 날아다닐 정도로 장사가 잘되었다는 말이다.

태평염전은 1953년 조성되었고 현재 국내 천일염전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태평염전은 증도의 슬로시티 이미지와 맞물리면서 신안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태평염전의 오래된 석조 소금창고는 소금박물관으로 변신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이런 내력을 보면, 대동염전과 태평염전이 ‘천일염 생산’ 그 이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2011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소금꽃이 핀다 : 2011 전남민속문화의해 특별전’이 열렸다. 천일염과 염전이 근대기 전남지역 생활민속의 대표 주자로 꼽힌 것이다. 당시 전라남도는 전시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자연이 빚어준 최고의 선물 천일염을 지역의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규모화·기업화를 추진하고 소금박람회 개최와 제품의 브랜드 마케팅 지원으로 천일염의 고급화 및 명품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자부심이 잔뜩 묻어난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그런데 요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천일염 가격의 하락, 생산량의 감소, 생산자(염부)들의 고령화 등으로 인해 염전의 운영 여건이 악화된 것이다. 그러더니 염전에 태양광 발전 설비가 빠른 속도로 밀려들고 있다. 비금도 대동염전의 경우, 2019년 염전 소유주들이 국가등록문화재 구역 가운데 일부를 해제해줄 것을 문화재청에 요청했다.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서였다. 오랜 심의 끝에 이 요청은 받아들여졌고 대동염전의 등록문화재 구역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천일염은 엄청난 노동의 산물이라서 고령화된 인력으로는 작업이 어렵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근대유산의 측면에서 보면 심히 우려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태양광 업체들이 고령의 염전 소유주들을 자극해 그들의 천일염 생산(염전 경영) 의지를 꺾어버리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시장 논리로 받아들이기엔 석연치 않다. 폐전(廢田)에 가속이 붙으면 우리가 그렇게도 자랑하던 천일염전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릴지 모른다. 아, 천일염에 열광하던 게 불과 10여년 전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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