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재탄생을 기다리며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화두는 진보세력의 공정성이었다. 이명박 정부에 광우병이, 박근혜 정부에 세월호가 있었다면 문재인 정부의 정권연장을 가로막는 것은 역시 내로남불이다. 실력으로 보나 콘텐츠로 보나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도 이상하게도 어려운 선거를 하고 있는 이재명 후보가 이를 잘 알고 재차 삼차 사과를 하고 있는 이유이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오픈넷 이사

박경신 고려대 교수·오픈넷 이사

보수를 단순화시켜보자면 역사 속에서 우연히 확보한 부를 지키는 것을 중심에 두고 있는 정치세력이다. 진보는 그런 역사가 만들어낸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운동’을 해온 집단이고 공정성은 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런데 왜 진보진영에서 특혜 문제가 더 두드러져 보일까? 첫번째 이유는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 및 법체제에서 많은 특혜가 법제화되어 있어 보수 쪽이 더 운동을 벌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설명되지 않는 불공정들도 많이 있다.

바로 진보진영은 투쟁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투쟁에 대한 보상심리 내지는 동지들 사이의 연대감이 강하다. 물론 정치세력의 발전과 정치의 발전이 겹치는 면이 있다. 과거에 민주화세력의 발전은 곧 정치의 발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진보와 보수의 싸움은 더 이상 민주 대 반민주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노동조합을 위해서 싸웠던 사람들도 더 이상 진보를 대표하지 않는다.

‘개혁’이 어느 집단의 성공으로 환원되는 시대는 지났다. 흑인대법관이 나오는 것이 개혁인 시대가 지났고 여성대통령이 나오는 것이 개혁인 시대도 지났음은 한국과 미국만 봐도 알 수 있다. 흑인이라는 집단의 성공도 여성이라는 집단의 성공도 그 자체로 개혁이 될 수 없듯이 민주세력의 성공도 그 자체가 개혁목표가 될 수 없다.

필자도 20대 때부터 어떤 ‘집단’에 속해 있다는 생각을 자의 반 타의 반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진보에 그 ‘집단’이 잘되는 것은 개혁과 분리하기 어려워지는 면이 있다. 이에 비해 보수 쪽에는 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이 상대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각자 잘되는 것이 각자의 지상과제이다. 서로 무언가 안 맞으면 언제라도 이합집산하고 싸울 수 있는 그룹이다. 이러다보니 더욱더 서로에게 엄정해지기도 한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처벌한 것은 김대중이 아니라 김영삼이었다.

진보집단의 생존은 중요하다. 옛날의 민주세력은 기초적인 생존을 위해 단결해야 했다. 지금의 민주세력은 기초적인 생존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서 얻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단결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개인적인 결격사유들이 드러나도 깨끗이 자리를 고사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고 서로 간에 이를 감싸주려는 모습이 보인다. 투쟁을 했었다고 해서 반드시 장관을 해야 하나, 반드시 국회의원을 해야 하는가? 투쟁과 생존을 위한 상부상조와 권력과 지위를 위한 상부상조는 완전히 다른 의미이다.

집단의 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놓아줄 때가 되었다. 우리 모두가 사회의 한 사람이다. 지역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할 때다. 운동권이었다는 이유로 곧바로 전국과 역사를 가로지르는 집단의 일원이라는 생각을 놓아줄 때가 되었다.

이제 진보정치는 ‘적들이 권력을 잡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외에 다른 내용을 채워야 한다. 지금까지는 민주화가 그 내용이었지만 민주화는 이뤘고 이에 대한 논공행상도 충분히 이루어졌다. 앞으로 정권을 잡으려면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는 것 외의 새로운 주장들이 있어야 한다. 그중의 하나는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의 개혁이고 또 하나는 표현의 자유라는 말로 대표되는 관용의 사회화이다.

하나를 더 들자면 공정성의 성숙을 말할 수 있겠다. 20년 전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비현실적인 규제들을 많이 접했다. 명분만으로 만들어진 규제와 문서화 요구들을 대부분 개선하려 하기보다는 편법으로 비켜가고 있었다. 그 후 법치주의는 강해졌고 그 규제들은 결국 실제로 집행되었다. 특히 디지털시대가 되면서 편법들의 기록이 쉽게 증거로 남았고 확대경을 어디에 들이대는가에 따라 편법들이 포착되고 처벌되었고 그 확대경을 쥔 검찰은 막강해졌다. 앞으로도 힘들어 보인다. 주변에서 정당정치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원칙과 가치보다는 자신이 믿는 집단의 득세에 모든 것을 걸고 서로 감싸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결국 저 확대경을 치우지 못하고 확대경 아래서 불타버릴까 걱정된다. 지역사회 리더가 전국적인 초역사적인 ‘집단’의 일원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사회의 일원으로서 진보정치인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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