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필요 없는 나라?

2022.03.19 03:00 입력 2022.03.19 03:01 수정

2017년 대선 전에 진보 교육계의 주요 인사들이 모인 간담회에 불려간 적이 있다. 마이크 순서가 내게 돌아오자 나는 차기 정부에서 영어교육 내실화를 주요한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자 한 학부모단체의 대표가 정색하며 말했다. “영어가 필요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죠!”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흔히 ‘영어가 필요 없는 나라’의 예로 일본을 든다. 이것은 일본의 경제구조가 내수 중심이라 가능한 일이다. 일본 경제의 대외의존도(GDP 대비 수출입액)는 오랫동안 10~20%대에 불과했고 2010년대 들어 30%를 넘어선 반면, 한국은 80%에 육박한다. 일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고 한국은 독일·네덜란드와 더불어 가장 높은 그룹에 속한다. ‘영어가 필요 없는 나라’를 만들려면 대외의존도를 인위적으로 낮추기라도 해야 하는데 비현실적인 얘기다. 더구나 OECD에서 최하위권인 서비스업 경쟁력을 높이려면 영어가 더더욱 중요하다.

공교육만으로도 영어를 잘할 수 있다. 바로 핀란드가 모범 사례다. 영어 구사능력이 112개국 중 7위이고 영어와 유사한 인도유럽어족을 제외하면 1위다(2019년 EF 영어유창도 지수). 핀란드의 영어 교수법과 평가방식을 벤치마킹하고 한국의 인터넷·IT 인프라를 활용하면 37위인 한국의 순위를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진보교육계 인사들은 종종 ‘교육이 중산층의 계층상승 욕망에 휘둘리면 안 된다’며 손사래친다. 왜 이럴까? 영어를 잘하게 되면 특정 계층만 수혜를 입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이유는 더 깊은 내면에 있을지도 모른다. 사회비평서 <K를 생각한다>의 저자 임명묵씨는 86세대 학생운동 주류에 대하여 “급속한 발전과 그에 따른 문화적 변화, 계층의 분화 등 근대화의 갖은 충격에 혼란스러워하며, 자신들에게 익숙한 농촌 공동체를 복원하고자 했던 이들”이라고 묘사한다. 실제로 내가 대학에 입학한 1980년대 후반 운동권 문화의 단골 소재는 제국주의와 매판자본에 짓밟힌 순결한 누이와 헌신적인 어머니, 그리고 대동(大同)세상을 향한 민중의 염원이었다.

당시 나는 이에 공감하지 못했는데, 전자는 명백한 여성혐오였고 후자는 전체주의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예술사학자 하우저를 통해 이러한 멘털리티가 세계사적 현상임을 깨달았다. 근대화가 늦을수록 공동체에 대한 향수와 외세·산업화·합리주의에 대항하는 낭만주의가 거세다. 그래서 영국·프랑스에 비해 근대화가 늦었던 독일의 낭만주의가 강했고, 근대화가 더 늦은 러시아의 낭만주의는 더 강했다는 것이다. 더 후발주자인 데다 식민지까지 경험한 한국은 말할 나위도 없지 않은가?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한국에 68혁명이 없었음을 개탄하는데, 어찌 보면 86세대는 이미 한국식으로 68혁명을 한 셈이다. 다만 근대화가 완료된 1968년 서구에서는 낭만적 영감과 에너지의 원천을 중국(마오주의)이나 인도(히피즘)와 같은 외부에서 찾은 반면, 전근대적 문화가 공존하던 1980년대 한국에서는 이를 내부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낭만적 공동체주의는 박현채의 <민족경제론>과 맞물려 서로를 강화했다. 수출 대신 내수, 외자 대신 자립, 대기업 대신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발전을 주장한 <민족경제론>은 박정희식 발전이론의 대척점에 있었다. 박현채의 영향은 1970년대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사실상 집필진이었다)과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논쟁의 촉발자였다)에 미쳤고, 작고한 뒤 한참이 지난 지금도 민주·진보 진영에 상당한 흐름으로 남아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와 박용진 의원이 박정희의 업적을 인정하자고 주장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의미심장하게도 둘 다 당내 86세대 주류와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진보라는 개념도 역사성을 지닌다. 영어를 백안시하는 진보가 더 이상 진보일까? 멘털리티와 경제구조 양쪽에서 임계점을 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진보에도 영어에 주목한 흐름이 있다. 전교조 제주지부장 시절부터 ‘들엄시민’(제주어로 ‘듣고 있으면’)이라는 영어교육운동을 이끌어온 이석문 교육감, ‘엄마표 영어’의 시조이며 참교육학부모회 울산지부장을 역임한 이남수씨가 대표적이다. 영어는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기후위기와 권위주의에 대응하는 세계시민교육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교집합을 포착하고 이를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영어가 필요 없는 나라’에서 벗어나 ‘영어 잘하는 세계시민’의 기치를 세우는 것, 이것이 진정한 혁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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