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국가를 묻는다

2022.11.03 03:00 입력 2022.11.03 03:05 수정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갑자기 156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희생자 중 10~20대가 116명이다. 세월호 참사와 그것이 남겼던 과제를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다. 지난 8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던 다짐과 노력은 어디로 갔을까. 말로 다 못할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낀다. 삶을 누리지도 못한 너무 젊은 희생 앞에서 ‘명복을 빈다’고 말하지 못한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거대한 사태에는 복합적이고 다기한 원인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국가와 사회 그리고 미래의 주인인 젊은이들이 살아갈 이 체제 자체에 대해 다시 진단하고 실천해야 한다. ‘국뽕’ ‘선진국’ 같은 허위의식 따위는 버리고 말이다.

이태원에는 온갖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오가고 또 그만한 문화적 축적이 있다. 이주민 중에서도 소수에 속하는 무슬림 사원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들의 클럽도 포진해 있으니, 인종주의적이고 획일적인 이 사회에서 그만한 자유와 개방성이 있는 곳이 없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다. 그런 곳에서 한국과 이태원이 좋아서 왔을 14개국 출신 26명의 외국인들도 목숨을 잃었다. 이태원길은 소위 ‘선진국’을 자처하는 국가의 위상이나 거리의 국제적인 명성에 걸맞지 않게 너무 좁고 안전하지 않았던 것이겠다. 왜?

누가 어떻게 이 엄청난 참사와 손실에 책임을 져야 할까. 그날 경찰의 배치와 112신고에 대한 묵살에 나타난 문제점에 대해서는 많은 지적과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그뿐만이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찰과 관료시스템이 갑자기 기능부전 상태가 된 것은 더 크고 근원적인 어떤 원인의 현상이 아닐까.

나는 용산구청장, 행정안전부 장관, 대통령실의 가볍고 무책임한 언동과 외신기자 회견에서의 한덕수 총리의 말이 ‘실수’라 생각하지 않는다. 책임을 회피하고 시민사회를 탓하는 위험한 발언과 어이없는 농담이, 있어야 할 곳엔 없고 다른 곳엔 과잉 배치된 공권력의 문제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근본적 무능과 빈약하고 전도된 의식이 있는 것이다. 정치검사와 특권층 엘리트들로 구성된 정권이 과연 보통 사람들의 관점에서 안전문제를 생각하고 다룰 능력이 있을까. 그들에게 만원 지하철 출퇴근과 산업현장의 위험에 대해 어떤 경험과 공감이 있을까. 2021년 산재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828명이었다. SPC 공장에서 목숨을 잃은 청년과 이태원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이 다른 존재가 아니다. 겨우 만들어놓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악덕 기업과 그 소유주에게 적용하기는커녕 시행령으로 무력화하려 하거나, 틈만 나면 주52시간 근무제를 없애려 하는 것이 이번 참사와 다른 맥락에 있지 않을 것이다. 굳이 해밀턴호텔의 불법 증축을 들지 않더라도 참사의 근인에 생명이나 안전보다는 돈, 사람보다는 이윤의 논리에 아부하고 기생하는 권력과 정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3월 ‘최악의 대선’을 치르고 (또 그랬기에) 필연적인 최악의 결과를 맞게 된 이후, 많은 이들이 정치뉴스는 안(못) 본다 했었다. 피로감 때문만이 아니라, 적실한 방향과 언어는 없고 지저분하고 소모적인 정쟁이 필요한 정치와 정책을 대신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각에선 진작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같은 구호를 들고 나섰지만 설득력은 약했다. 비록 대통령의 지지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함에도, 그 주체와 어젠다가 대선 때부터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책임의 반은 당연히 더불어민주당의 실패와 그 지도자의 흠결에 있었다. 진심으로 믿고 기댈 만한 지도자와 정치세력이 없고, 여전히 새로 자라나지 못하고 있는 혼돈이다. 이 와중에 이태원의 비극이 터졌다. 경제와 안보 상황도 더 심각해지고 있고 심화된 기후위기가 또 언제 심각한 자연재해를 불러올지 모른다. 이들을 잘 관리하고 대처할 능력이 윤석열 정권에 있는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어디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까. 이 위기와 참변에서 그래도 뭔가 교훈을 얻고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면, 혼돈 속에서도 타인의 생명을 구하려 이태원 길바닥에서 CPR(심폐소생술)에 뛰어든 시민들이다. 그들은 ‘피 묻은 빵’은 먹지 않겠다는 시민적 공덕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대학생들과 노동조합원들과 서로 다른 이들이 아니겠다. 그외에는 다른 주체가 없고, 공감과 연대 외에 다른 필요한 마음이 없다. 세월호와 이태원을 겪은 청년들은 부디 마음을 잘 추스르고 책임의 소재가 어디 있는지 냉철하게 살피기 바란다. 그리고 무능한 정치와 부패한 기성세대를 용서하지 말고 연대로써 부수고 자신들의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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