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이 아닌 내실이 필요한 오늘

2022.12.12 03:00 입력 2022.12.12 03:01 수정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기본주택(경기도), 누구나 집(더불어민주당), 상생주택·안심주택(서울시), 원가주택(국토교통부)….” 선거철이면 쏟아져 나오는 각양각색의 ‘○○주택’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려면 이 복잡한 정책들을 울며 겨자 먹기로 구분해내야 한다. 비단 주택 영역만의 특징은 아니다. ‘약자와의 동행’ ‘기본 시리즈(기본소득·주택·금융)’ 등 정치 풍토가 어느샌가 브랜딩부터 시작하는 흐름으로 바뀌었다. 브랜딩은 당연히 중요하다. 직관적이고 기억에 남는 이미지는 국민이 국가 정책을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차별화를 통해 새로운 정책을 시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제 역할을 해낸다면, 정치인의 브랜딩이 그저 표팔이 수단으로만 폄하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최근의 동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정책의 내용은 그대로 둔 채 포장지만 요란하게 바꾸거나 시범사업만 그럴싸하게 추진하고 유야무야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공공주택은 ‘필요한 대상’과 ‘적정 가격’을 정하는 기본적인 골조에서 크게 차이를 두기 어렵다. 물론 건설임대, 매입임대, 전세임대, 민간이 담당하는 사회주택 등 공급 방식에 따라 구분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업 구조를 약간만 바꾼 뒤 브랜드를 새로 출시하니 정책이 점차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았던 행복주택이 대표적인데, 유형 구분의 필요성이 낮고 사람들의 헷갈림만 가중되어 결국 통합공공임대로 돌아가는 절차를 밟고 있다. 돌고 돌아 원점이니, 정책을 새로 세팅하고 회귀하기까지의 중간 비용은 결국 세금 낭비로 귀결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정치가 브랜딩에만 치중한 결과, 지속적이고 내실 있게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 및 지자체의 모습을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기본주택이나 누구나 집 같은 브랜드 주택은 선거철이 지나서인지 이제 어디에 어떻게 공급될 예정인지 알 수도 없다. 안심주택을 비롯한 서울시의 ‘안심’ 시리즈는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존 정책의 이름만 안심으로 바꾼 것들이 대부분이다. 반지하를 매입하겠다는 오세훈 시장의 선언으로 만들어진 안심주택 브랜딩의 이면에는 올해 공급 목표의 10%도 달성하지 않고 있는 SH 매입임대주택의 안타까운 실적만 있을 뿐이다.

기본을 붙이든 안심을 붙이든 상관없지만, 충분한 공급, 적정 임대료 등 주거 안정화를 위해 필요한 핵심이 빠져 있다면, 모두가 터무니없는 수식어로만 남게 될 것이다. 도시의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기울어진 운동장의 낮은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폭우, 혹한, 화재 등 재난에 더욱 취약해졌다. 급격한 경제 불황과 기후위기 속에 내일을 허락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극적인 브랜드가 아닌 일상을 보호하는 내실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대단한 혁신이 아니더라도 기본기라도 충실한 정치면 충분하다.

하기야, 정책의 철학과 내실은커녕 브랜딩조차 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있으니, 차라리 브랜딩이라도 하는 게 감지덕지인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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