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마지막을 함께하다

2022.12.17 03:00 입력 2022.12.17 03:02 수정

산문 안팎을 가리지 않고 겨울 추위 기세가 대단하다. 어제는 모처럼 해인사에 많은 눈이 내렸다. 동안거 수행 중인 대중 스님들이 새벽예불을 마치자마자 바로 눈을 쓸기 시작했다. 한참을 빗질하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쯤 되어서야 길이 트이고 울력이 마무리되었다. 그래도 자동차나 사람이 다닐 정도가 되니 마음이 놓인다. 내일은 아침 일찍 산문을 나서야 한다. 해인사 승가대학 호스피스 자원봉사활동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준비된 회향식을 하고 참여한 학인 스님들과 함께 해인사로 돌아와야 한다. 해인사 승가대학 졸업반 학인 스님들은 지난 4년간의 기본 교육과정을 마치면서, 그 감사함을 세상에 회향한다는 의미로 매년 호스피스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고 있다. 특히 지난 2년간 코로나19 때문에 중단되었던 프로그램을 올해 다시 진행할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롭다.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다. 때에 따라서는 그 순서를 가리지 않는다. 늙음 없이 병고나 사고가 먼저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임종을 앞둔 이의 마지막을 함께한다는 것은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 양상이야 어떻든 삶의 끝자락을 곁에서 지켜봐 드리고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선행이고, 그 도움을 주는 이에게도 영적으로 성장하는 좋은 수행이 된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고대 인도의 불교 수행자들은 공동묘지에서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면서 무상관(無常觀)과 백골관(白骨觀)을 수행했다고 한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모든 욕망과 집착이 화로 위의 눈송이처럼 부질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무심코 잊고 살거나, 심지어는 다가오는 ‘죽음’이라는 사건을 애써 외면한다. 그만큼 죽음을 성찰하고 그 의미를 온몸으로 체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여러 종교에서는 죽음을 소중한 영적 자각의 계기로 삼는다. 붓다 또한 “모든 발자국 가운데 코끼리의 발자국이 최고이듯이,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들 가운데 죽음에 대한 명상이 최상이노라”(대반열반경)라고 설했다.

간병 수행은 고통을 겪는 환우를 돌보면서 무상을 사유하고 자비심을 키워갈 수 있는 훌륭한 방편이다. 수행자의 삶을 살겠다고 서원을 한 스님들조차도 절에서 경전이나 어록을 통해 생(生)과 사(死)라는 주제를 늘 듣고 말하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승가대학에서 강의하다 보면 다양한 학인 스님들을 만난다. 그들 중에는 머리가 총명해서 경전을 잘 이해하거나 한문 경전을 잘 읽어내서 주목을 받는 학인이 있지만, 정작 직접 실천하는 이런 봉사활동 현장에서는 소극적으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대조적으로 어떤 학인은 강의실에서는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더라도 이런 현장에서는 자신만의 놀라운 소통 능력으로 직접 환우들과 활기차게 웃으면서 교감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수행자로 성장하면서, 그 어느 하나도 포기하거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자질임이 틀림없다. 경전 공부도 중요하지만 직접 삶과 죽음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교차하는 현장에 존재 이전을 해 봄으로써 체화되지 않은 이론이 얼마나 무력한지 깨닫게 된다.

학인 스님들은 호스피스 병동에 머물면서 새벽예불을 시작으로 청소하고, 환우들 식사를 보조하고, 임종이 임박한 환우 가족들과 함께 경전을 합송하고, 환우가 사망하면 의식을 집전한다. 그리고 이 활동에 필요한 전문적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다양한 강의를 수강한다. 대부분 첫 한 주일 동안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라서 어색하고 서툴지만, 시간이 지나 적응이 되면 누구보다도 능숙하고 열정적으로 활동에 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뿌듯하고 대견스럽다. 동시에 교수사라는 나 자신과 나의 수행을 되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이 과정이 마무리되고 동안거가 해제될 무렵이면 모두 다 한층 깊어지고 넓어진 수행자의 면모를 갖추어갈 것이다. 참여 학인 스님들은 해인사 승가대학에서 진행하는 정규 교과과정 이외의 프로그램 중 호스피스 병동 자원봉사를 만족도가 가장 크고 교육 효과도 높은 과정으로 꼽는다. 내일 이 과정을 모두 마친 우리 학인 스님들의 입에서 어떤 소감과 다짐이 나올지 벌써 기대가 된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자비와 연민의 마음으로 도움을 주고 기도하는, 우리 학인 스님들의 앞날에 가피와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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