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병원의 실험, 노동과 함께하는 일터

녹색병원의 작은 시도가 주목된다. 지난 3년 동안 비정규직 없는 병원을 위해 정규직 전환을 단계별로 추진했다. 요양보호(17명), 조리배식(25명), 청소(17명) 비정규직 59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병원 전체 인력의 10% 인력이다. 기간제 계약직도 아니고 파견용역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공공병원이나 대학병원도 아닌 300병상 규모의 민간병원이다. 요즘같이 ‘노동’이 정치의 대상으로 도구화된 현실에서 생경할 수밖에 없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소위 ‘공정’이 폭풍처럼 다가왔던 시점이었다. 그러기에 정규직 전환의 비용문제나 내부 구성원의 반응과 변화까지, 궁금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병원에 찾아갔다. 짧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정규직 전환 노동자와의 만남부터, 병원장과 노동조합 지부장과의 이야기 모두 잊지 못할 단상이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병원 소통을 맡아준 분의 직책부터 남달랐다. 허울뿐인 조직과 사람이 아닌 사회연대 담당자였다. 짧은 만남과 인상을 지면을 통해 꼭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녹색병원 노사의 정규직 전환 결정은 철학과 신뢰였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일상의 삶이 변화된 순간이었다.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은 물론 노동조건과 환경의 변화가 적지 않았다. 식비와 교통비 지급, 건강검진 등의 눈에 띄는 변화가 확인된다. 무엇보다 이전과 달리 연차휴가나 병가 및 휴직이 권리로서 가능하다. 물론 예전에도 법률에 근거해 가능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특히 아프면 쉴 권리가 보장된다는 것은 파견용역 업체 소속일 때와는 전혀 다른 변화 중 하나였다.

사실 파견용역 외주업체 직원 다수는 별도의 식비가 없다. 이 때문에 밖에서 식사를 하기보다는 도시락을 싸오는 분들이 많다. 낮은 임금에 저렴한 구내식당도 부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이후 병원 사람들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은 ‘평등한 일터’의 모습이다. 그렇게 녹색병원의 더불어 사는 일터는 시작된 것 같다. 임시출입증이 아닌 사원증(직원 카드)을 받았을 때, 어느 순간 정년 퇴임식을 마치고 다른 삶을 찾고자 할 때 비로소 ‘안’과 ‘밖’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모두 녹색병원 일터에서 확인된 몇몇 징표들은 평등으로 가는 과정의 모습들이었다.

사실 노동시장에서 고용 안정성과 차별은 오래된 숙제다. 사업장 규모가 클수록 혹은 다양한 직업·직군이 혼재된 곳일수록 차이와 차별은 혼재되어 구분도 쉽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면 직접차별부터 간접차별까지 적지 않다. 그러나 녹색병원은 그 실마리를 하나둘 찾아가고 있었다. 아침 일정을 끝내고 잠시 이야기를 나눈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환자나 보호자들과 이야기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고, 병원에서 일하면서 건강도 함께 찾는 것 같다”고 한다. 올해 66세였지만 건강을 잃지 않고 계속 일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녹색병원은 2003년 공익병원으로 출발해 개원 20년이다. 지속적으로 산재·직업병 환자, 인권침해 피해자, 지역 내 소외계층을 돌본 공익활동은 노동을 보는 시선의 차이였다. 정규직 전환의 추가 비용은 사실이라고 한다. 인건비와 간접비 등 추가 소요 비용의 부담이 없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외주업체의 몫으로 돌아가는 이윤과 관리비 등이 상쇄되어 감당할 정도는 된다고 한다.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작업과정의 안전과 건강문제 등 고민도 접할 수 있었다.

녹색병원 누리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병원’이라는 표어를 엿볼 수 있다. 이 때문일까. 2021년 보건의료노조와의 공동선언을 통해 “비정규직을 제로(zero)로 만들어가겠다”는 약속을 노사가 함께 실천하고 있었다. 59명의 노동자들도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 적용(각종 휴일·휴가, 병가, 돌봄휴직, 의료건강, 교육 등)을 받는다. 녹색병원의 사회적 가치는 실험이 아닌 실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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