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로의 전환이 재앙이 되지 않는 법

2023.02.28 03:00 입력 2023.02.28 03:01 수정

저출산 소식은 더 이상 충격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출생률이 0.8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은 달리 받아들여야 할 신호이다. 이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와 어떠한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볼 것을 요구한다. 조금씩 뜨거워지는 냄비 속에 있는 개구리 처지에서는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민다고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밖에서 지펴지고 있는 불을 꺼야 한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비유는 이렇게 했지만 사실 물을 확 들이부어 불을 끄는 접근을 하기는 어렵다. 우린 개구리도 아니고 사회는 냄비 속보다 복잡하다. 저출산은 여러 현상들 중 하나일 뿐이다. 비슷한 경제력을 갖춘 여러 나라 중 한국은 유독 아이들은 덜 행복하고, 일하다 다치거나 죽는 사람의 비중이 높으며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노동시간은 길지만 저임금노동자 비중이 높고 직장에서는 이른 나이에 퇴출된다. 핵심 연금제도인 국민연금은 다른 나라보다 보장수준이 낮다. 강도 높게 일하다가 자주 다치고 나이 들면 일자리의 질은 낮아지고 노후는 불안하다는 것이다. 아이를 갖지 않는 각자의 선택은 생애 전반에 걸친 행복의 함량 부족과 관련되어 있다.

한국사회는 오랫동안 ‘사람을 희생시키는 성장’을 해왔다. 수십년 동안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이런 성장 방식은 각자가 쓸모를 다한 순간 주변으로 밀려나도록 만들었다. 또한 성장의 과실을 분배하는 데에도 희생의 정도와 분배 몫이 일치하지 않는 경험을 오랫동안 하였다. 초기 산업화의 주역이자 가장 가난한 세대인 현재의 고령노인이 대표 격이다.

혁신이 성장을 견인하는 시대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사회와 삶을 이끄는 원리에서 사람은 소외되어 있다.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하는 것은 과거 노동력을 집중 투입하는 성장이 노동과 함께 가지 않는, 사람 없는 성장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이다. 노동력을 갈아넣는 성장과 노동 없는 성장, 이 두 가지는 극단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듯 보이지만 사람을 희생시키는 성장이라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이런 전환기에는 유능하고 운 좋은 소수가 되거나 도피하거나 하는 선택지만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둘 다 평범한 다수가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아니다.

흐름을 바꿔야 한다. 사람들이 다른 선택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변화에 적응하는 책임과 그 결과를 경쟁과 운에 맡겨두는 방식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 초고령사회에서 노동력 공급이 부족해진다면 더 강도 높은 장시간 노동을 요구할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학습과 일이 같이 가도록, 더 늦은 나이까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사회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그동안 저출산 대책에 쓴 돈을 각자에게 나눠줬다면 성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랬다면 정말 결과가 달랐을까? 또 다른 이들은 국민연금 보장수준을 줄이고, 각자 낸 만큼만 받는 제도로 바꾼다면 위기에서 벗어날 것이라 말한다. 노후보장의 세대 간 계층 간 연대를 끊어내자는 말이다.

초고령사회로의 이행에서 미래에 대한 책임을 개인이 온전히 떠안도록 하는 생태계에서는 냄비 속 온도는 계속 올라갈 것이다. 개인과 사회의 새로운 관계맺음에 기초한 노동, 연금, 교육, 돌봄, 주거제도 등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특히 사람을 중심에 놓는 성장과 분배체계가 조성되지 않는다면, 냄비 속 온도는 떨어지기 어렵다. 성능 좋은 선풍기를 가진 누군가는 덜 불편할 수 있지만 최종적인 결과는 모두에게 마찬가지이다.

이런 이유에서 미래 설계에 사회연대에 기초한 복지국가 구상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정부의 노동·연금·교육개혁이 개인과 사회의 연결, 성장과 분배에 대해 어떤 철학에 바탕을 두게 될지, 이 속에서 사람과 행복은 과연 중심에 놓여 있을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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