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함성’으로 우리 사회는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까?

2023.02.27 03:00 입력 2023.02.27 03:04 수정

뒤늦게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봤다. 망국으로 치닫는 구한말 조선을 배경으로 여러 인물들이 구국의병으로 각성해가는 것이 주 내용이다. 극은 ‘매국-협력’과 ‘구국-저항’ 간 대결을 선명히 드러낸다. 하지만 이후의 역사를 아는 시청자들은 행위자들의 의도가 정반대의 효과를 낳기도 한다는 걸 안다. 어떤 저항은 혼란한 정세 속에서 망국의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납작한 묘사로는 포착할 수 없는 정세에 여러 분기점이 솟아나던 시대였다.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지금이 역사적 분기점 같다. … 지금 우리 사회, 정치, 경제 모든 분야가 퇴행을 겪고 있다.” 구속될 위기에 처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역사적 분기점일까? 그는 민주화 투사 김대중 전 대통령 뒤에 자기 자신을 세우기도 했다. 윤석열 치하 ‘검찰독재’가 횡행하는 ‘검찰공화국’이라는 퇴행을 막아낼 투사로서 말이다.

오래간 이 땅에 반복된 익숙한 구도인데 때마침 대통령은 ‘법치’의 수호자다. 1980년대 경험했던 법치, 즉 법에 의한 지배로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평정·배제하는 정치적 억압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법을 통해 정적을 제거하는 레퍼토리가 재생되면서, 역사적 분기점에 선 그가 퇴행을 막아낼 것이란 착시를 낳는다. 지난하게 이어져온 민주화를 향한 여정이 다시 시작된다.

윤석열 정부에 맞선 이 싸움을 잘해내면 민주주의는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될까? 하지만 유사한 싸움들이 이어지면서 우리 민주주의는 외려 위험에 빠져갔다. 신기욱 교수의 말처럼 소나기에 흠뻑 젖어갔다. 정파·진영을 가리지 않고 법을 능숙히 활용하고, 사법적 진실 다툼이 일상화되면서 법기술은 정치를 대신하고 있다. 나아가 정파적 이해관계에 법의 해석이 종속되는 상황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팬덤정치와 부족주의를 지적하고 민주주의 붕괴의 신호를 쏘아대지만, 익숙하게 보아온 대결로 미끄러지며 수렴될 뿐이다. 만약 지금의 정세를 구국을 위한 저항이 망국의 돌을 쌓고 있는 상황이라 말하면 과장일까? 시효가 만료된 납작한 적대에 조건부 호응하는 사회운동은 흠뻑 젖어가며 공멸하는 우리를 묵인하고 있는 건 아닐까?

2월 말∼3월 초, 여러 단체들이 총회, 대의원대회 등을 연다. 앞다투어 ‘퇴행’에 맞서 반격의 태세를 갖추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비상시국회의’를 만들었다. 광장을 다시 시민의 함성으로 메우면 우리 공화국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일까?

오랜 싸움을 통해 ‘적폐를 청산’하고 수차례 ‘승리’하기도 했지만, 어김없이 공화국이 비상한 위기에 처했다는 곤욕스러움에 대한 질문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이 비상한 때라면, 그 비상함은 우리 스스로 너무 쉽게 답을 내리고 있다는 데 있지 않을까? 아니 수십년간 똑같은 답을 꺼내는 게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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