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한번은 돌파해야 한다

2023.03.10 03:00 입력 2023.03.10 10:12 수정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해석 투쟁으로 소란스럽다. 표결 공방은 이내 이 대표 거취 논란으로 번졌다. 총선 리스크와 정계개편 밑그림이 연동됐다. 그러다 지난 8일 더미래 기자회견 후 이 문제가 사그라들었다. 비명계 일각에선 “이 대표가 물러나도 전당대회에서 이길 가능성이 낮다”는 좀 더 현실적 이유를 들었다. 그러면서도 “장기전”이라는 표현을 썼다. 사법 리스크가 살아 있는 한 이 대표 거취는 언제든 뇌관이라는 ‘느긋함’이다. 추가 구속영장, 당 지지율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구혜영 정치에디터

구혜영 정치에디터

애당초 이 대표 사법 리스크는 프레임 싸움으로 갈 것이라 예상했다. 실제 여야는 정치 쟁점화에 몰두했다. 검찰의 부실 수사 정황이 짙으니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으면 영장 기각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이 대표와 민주당은 본회의장을 벗어나지 않았다. 국민의힘도 “총선 전략=이재명”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한다.

이 대표 거취도 경우의 수가 다양하다. 물러난다 치자 사법 리스크를 털어낸다 해도 다음 지도부 성격에 따라 복귀할 수도, 못할 수도 있다. 당 입장에선 전열을 가다듬는 계기일 수도, 반대일 수도 있다. 대선 경쟁자를 ‘이례적이게도’ 공직선거법으로 걸어버린 윤석열 정권 특성상 다음 후임자가 검찰의 타깃이 아닐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반대로 이 대표가 버틴다 치자. 유죄가 확정돼 정치 생명이 끝날 수도 있고, 야당 탄압 상징성을 획득해 복귀할 수도 있다. 중립지대 한 의원은 이 딜레마를 “이재명만으로도 안 되지만 이재명 없이도 안 된다”고 정리했다. 정답도 없고 예측도 어렵다. 지지고 볶으면서 내년 총선까지 갈 게 뻔한 상황이다. 이 대표 결단밖엔 길이 없다. 이 대표에게 ‘사즉생’을 요구하는 글이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재명이란 정치인의 독특한 캐릭터 탓도 있다. 그는 정치 지도자로선 보기 드문 ‘생존형’이다. 대선 패장은 무르익은 명분을 쥐고 등장했지만 그는 대선 패배 직후 곧바로 당 대표 출마를 감행했다. 대선 자산 1600여만표가 유일한 명분이었다.

그는 비주류이면서 최강자인 야당 리더다. 통상 비주류는 주류가 되려는 투쟁을 통해, 최강자는 성찰을 통해 리더십을 강화해왔다. 그러나 비주류이면서 최강자라는 비대칭적 위상은 변화와 쇄신을 이루기 어려운 조합이다. 어느 쪽도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

당 주변에선 본격적인 검찰 수사 이후 이 대표의 심리적 위축 현상이 심해진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도망가는 싸움에선 둘 다 다치진 않겠지만, 둘 다 못 이기는 싸움을 오래 치러야 한다. 결과는 칼자루 쥔 쪽 승리다. 사법 리스크는 검찰과 법원의 시간으로 넘어갔다. 특히 재판이 본격화하면 유동규, 김성태 등과 돈을 줬느니, 안 받았느니 하는 ‘지저분한’ 싸움을 해야 한다. 야당 탄압, 검찰개혁 구호가 통하지 않는 국면이다. 자발적으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든지, 체포동의안 부결의 정당성을 설득하든지 오롯이 그의 몫이다.

그렇다고 사법 리스크를 대체할 만한 다른 무엇도 없었다. 이 대표 취임 후 169석 제1야당은 ‘반응 정당’을 벗어나지 못했다. 대표가 웅크리니 지지층이 나섰고, 같은 당 의원들을 색출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당 정치혁신위원회는 때맞춰 당원권 강화 깃발을 들었다. ‘투표권’만 늘리는 당원권 강화라면 2007년 대선 당시 박스떼기 유령 당원 사태가 재연되는 건 시간문제다. 당원의 일상적 정치활동을 보장하고, 당 소속감을 높이는 교육이 당원권 강화를 위한 우선 작업 아닌가. 20여년간 충돌하고 있는 대중 정당과 원내 정당의 이중 구조는 이번에도 방치될 위기다. 대표가 된 이후 이 대표는 정치력도, 이재명 정치의 가치도 보이지 못했다.

3·8 국민의힘 전당대회 이후 여야는 내구성 싸움에 돌입했다. 내부화합 경쟁이다. 이 대표는 이 경쟁에서 지면 분당, 정계개편 리스크까지 감당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친윤 단일대오로 정비했다. 유승민, 이준석 신당이 만들어질 경우 민주당은 ‘정권심판론’ 깃발도 뺏길 수 있다.

사즉생은 생명을 다한 리더십이라고 생각했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선 거물 정치인의 사즉생을 따르기만 해도 안심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사즉생 리더십이 아직 유효하다고 생각을 고쳐먹는 중이다. 윤석열 정권의 퇴행과 무소불위의 검찰이 다시 민주 대 반민주 대결을 자극하면서다. 이 대표가 한 번은 돌파해야 한다. 그냥 버티고, 그냥 물러나면 이재명의 정치 또한 없다. 한 번은, 제대로 돌파해야 한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