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샴페인, 문명개화

2023.05.12 03:00 입력 2023.05.12 17:23 수정

“만일 춘향이라도 그가 현대의 여성이라면 그도 머리를 파마[permanent]로 지질 것이요, 코티[Coty. 프랑스산 화장품]를 바르고 파라솔을 받치고 초콜릿, 아이스크림 같은 것을 먹을 것이다. (중략) 커피를 먹는 생활이 먼저 생기고, 파마식으로 머리를 지지는 생활이 먼저 생기니까 거기에 적응한 말인 ‘커피’ ‘파마’가 생기는 것이다.” 소설가 이태준(1904~?)의 <문장강화> 속 한 대목이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오늘날까지도 널리 읽히는 글쓰기 안내서인 <문장강화>는 1930년대에 집필과 연재가 시작되어 1948년 단행본으로 나왔다. 한 소설가가 태어나 글 쓰고 살아간 내내가,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였다. 모든 변화는 급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고 보니 춘향은, 신재효(1812~1884)가 정리한 판소리 대본에서는 유리종에 받은 귤병차(橘餠茶)를 달게 마셔 넘겼다. 봄날 그네 뛰다 목이 마른 이팔청춘의 한 잔이 이랬다. 귤병은 감귤류를 꿀과 설탕에 졸여 만든 화사한 별미이다. 귤병으로 만든 청량음료가 귤병차이다.

신재효의 시대라면 서울과 개항장의 권력자와 부자 사이에서 커피·초콜릿·아이스크림 등이 조금씩 돌아다녔을 뿐이다. 하지만 물꼬가 터지기까지 한 세대로 충분했다. “당당히 양요리루(洋料理樓) 의자에서 가비차(커피)를 압음(狎飮, 즐겨 마시다)하며 삼편주(三鞭酒, 샴페인)를 결파(決破, 들이켜다)하니 문명개화 이 아닌가.” 대한매일신보 1906년 1월10일자에 실린 풍자 가사 ‘피개화(皮開化)’의 한 구절이다. 어느새 커피, 샴페인에 ‘생활’을 가져다 붙일 만한 시대가 왔다. 커피, 샴페인으로 다인 ‘껍데기 개화[皮開化]’꾼, 힙스터 개화 놀이패에게 참개화의 의미를 따져 물어야 할 판이 됐다. 그러더니 다시 한 세대 지나 귤병 동아리의 음료에 또 다른 심상(心象)이 껴든다. “소다수 대신에 화채를, 커피 대신에 수정과, 홍차에 필적할 음료로는 식혜, 보리수단자 등등으로. 이건 참 그럴듯한 착안이어서 다방은 전보다도 더욱 번창하고 풋내기 커피통을 자랑하던 패들도 속속 수정과당으로 전향해오는 격이었다. 건시의 단물에 생강이나 육계의 향료로 풍미를 곁들인 음료는 커피보다 나으면 낫지 못하지 않았다. 화채만 해도 철 따라 단 꿀물에 진달래 화판을 뜨게 하고 혹은 귤 씨를 갈아 넣고 배나 사과 쪽을 넣기도 해서 유리잔에 그득 찬 그것은 소다수쯤의 풍류가 아니었다. 식혜나 수단자도 마찬가지였다.”(원문은 일본어. 이호철 번역) 1세대 커피 애호가 이효석(1907~1942)이 1930년대 말 쓴 것으로 보이는 소설 <소복과 청자>의 한 대목이다. 커피를 즐기던 조선의 힙스터들에게 수정과·식혜·보리수단(자)·화채 등속이 이국취미로 돌아오기도 했다는 말이다. 이런 엎치락뒤치락은 늘 있던 일이다.

지금 한국인에게는 어떤 흐뭇하고 수더분한 음료가 있는가. 개화꾼 행세, 힙스터 놀이, 이국취미로 쥐어짠 음료 말고 무엇이 당대에 고전적인 음료가 될 수 있을까. 커피에서 화채에 이르는 사물에 자연스러운 당대의 ‘한국’이 깃들기 바란다. ‘생활’이 깃들기 바란다. 한국형 여름을 앞둔 한국인 아무개의 작은 바람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