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칼린(Martin Carlin), 캐비닛, 1775~1780년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품.

마틴 칼린(Martin Carlin), 캐비닛, 1775~1780년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품.

어릴 때 우리 집에는 목재로 된 장식장이 하나 있었다. 예쁜 병이나 인형을 넣고 용도 그대로 사용할 때도 있었지만, 잡다한 책과 생활용기함으로 쓰일 때도 있었다. 나중에는 집이 비좁아서 버렸던 기억이 난다.

역사적으로 장식장의 흔적은 르네상스 유럽 귀족의 수집품 진열 공간인 ‘캐비닛’에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 ‘갤러리’에 해당하는 공간 및 작품 전시의 메커니즘을 떠올리면 된다. 우리 집 장식장은 결국 부피만 차지한다며 사라졌지만, 나는 미술관 같은 공공의 진열 공간을 찾아 비평하는 일을 현재 업으로 하는 셈이다.

장식장 구비 여부와 무관하게 요즘에는 가방 속 소지품만으로 취향을 공유하기도 한다. ‘왓츠 인 마이 백(what’s in my bag)’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는 이들 모습은 온라인 피드에 익숙하게 등장하는 콘텐츠 소재다. SNS 플랫폼은 개인이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 언제 어떤 경험을 했는지 기록하고 공유하며 마치 가상의 캐비닛 같은 역할을 한다. 디지털로 축적되고 물리적 제약은 없는 이미지 수집이 24시간 타임라인에 노출된다.

사람들은 수집과 진열에 익숙한 매일을 살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쇼핑 목록과 방문지를 궁금해하며 인스타그램을 살핀다. 전시장 미술작품도 온라인에서 더 많이, 오래 소비된다. 컬렉터는 고급 취미이자 재력을 자랑하는 지위로 MZ세대의 인기를 끈다. 작품의 의미를 파고드는 비평가보다 작품 구입 후 인증한 재력가가 ‘인플루언서’라며 더 환영받는 양상도 짙다.

그래서 나도 고민이다. 자본의 침투가 역력한 이 무형, 무한의 장식장을 앞으로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지.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