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고착화에 대한 경계

지난달 발표된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0% 상승을 나타내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목표치(2% 상승)에 바짝 다가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난해 6월 CPI가 전년 동월 대비 9.1% 상승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1년 만에 빠른 속도로 안정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 이전에 목표치에 이를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기대감을 확대 해석하며 “인플레이션이 사실상 끝났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물가 상승 국면이 거의 종료된 만큼 이제는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서 연준이 적극적인 금리 인하 등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며 자산시장에 열기를 더해주고 있다.

오건영 신한은행 WM본부 팀장

오건영 신한은행 WM본부 팀장

그러나 여전히 연준은 지난달 0.25%의 추가 금리 인상을 통해 기준금리를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5.25~5.5%까지 높였다. 시장 참여자들은 인플레이션이 사실상 끝났음을 기대하고 있는데 연준은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긴축의 강도를 높인 것을 보면 시장 참여자들과 연준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준은 왜 긴축을 이어가는 것일까?

현재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CPI다. 하지만 연준은 가격 민감도가 높은 에너지와 식료품 등을 제외하고 산정한 ‘코어 CPI(핵심 소비자물가지수)’를 눈여겨보고 있다. CPI보다 코어 CPI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국제유가를 비롯해 금융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에너지나 농산물 등은 가격 변동성이 큰 데다 금융투기 세력의 영향을 상당 부분 받고 있어 이들 가격의 변화만으로 전체 CPI가 크게 변화하는 착시현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코어 CPI는 여전히 전년 동월 대비 4.8% 상승을 기록하며 연준의 목표치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내려오는 속도 역시 CPI에 비해 느린 편이다. 연준은 2024년 말~2025년 초에야 코어 CPI가 목표치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목표치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내려오는 속도가 느리다면 강한 긴축을 통해 끌어내려야 하기 때문에 연준은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기준금리 인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연준은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무너지며 경기 침체를 불러왔던 1970년대의 ‘아픈 기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1950년대 초부터 1960년대 말까지 미국 경제는 저물가·고성장 국면을 이어가고 있었다. 장기간 물가가 안정되며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계감이 사라지면서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을 중심으로 강력한 경기부양에 나섰다. 하지만 경기 부양으로 인해 수요가 늘어나며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졌다. 게다가 제4차 중동전쟁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인플레이션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연준의 대응이었다. 당시 연준 의장인 아서 번스는 물가가 올라갈 때는 빠른 금리 인상으로 대응했으나 물가가 내려오자 곧바로 경기 부양에 초점을 맞추면서 빠른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인플레이션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행된 금리 인하는 인플레이션이란 경제의 병을 키우게 됐다. 이후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지자 이를 제압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이어가는 이른바 ‘스톱 앤드 고(Stop & Go)’의 실수를 1970년대 내내 반복하게 된다.

인플레이션이 10년 이상 이어지면서 미국의 CPI는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10% 넘는 상승을 지속했다. 이렇게 강해진 인플레이션을 제압하기 위해 새롭게 임명된 폴 볼커 연준 의장은 당시 기준금리를 20%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물가와의 전쟁에 나서기도 했다. 20%대의 기준금리를 감당하지 못한 기업이나 가계는 잇달아 파산했다. 실업률도 급격하게 치솟는 등 당시 미국 경제는 극심한 경기침체에 시달렸다.

1970년대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연준이 인플레이션의 불씨를 제대로 꺼뜨리지 않고 ‘스톱 앤드 고’를 반복하면 인플레이션 고착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일러준다. ‘인플레이션 고착화’라는 단어는 1970년대 인플레이션 파수꾼을 자처하는 연준에 큰 상처를 남겼을 뿐 아니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장기간의 경기 침체라는 희생을 필요로 했다. 이에 연준은 안정세를 보이는 CPI 상승률에도 불구하고, 코어 CPI 흐름에 집중하며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고착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연준은 시장의 기대보다는 다소 높은 금리를 오랜 기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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